(수필) 하얀 웃음

  • 기사입력 2018.07.24 10:42
  • 기자명 장사현

  하얀 웃음

  동시·동화의 숲을 찾아 협소한 산길을 오른다. 유월 첫 주말, 쪽빛 하늘 아래 솔풀이 있고 계곡의 물소리 청아하다. 여기다 싶더니 마삭 줄 꽃향기가 진동하며 번뇌를 날려버린다.

  열린아동문학관 마당가를 흐르는 도랑에 담긴 술병에서 시가 흐른다. 숲길 여기저기 나무 밑에 세워진 수상자 입석, 나무의 주인이 된 값진 삶의 흔적들이 빛난다.

  문학상 시상식 준비로 분주한 사람들, 그들 틈에 유난히 하얀 웃음의 중년 남자가 보인다. 10억 원대의 기금을 내고, 매년 수천만 원의 돈을 들여 문학지 발행과 행사를 지원하면서 전국의 아동문학가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한다.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어느 행사 막론하고 힘 있는 사람이 단상에 오르는 것. 그런데 하얀 웃음의 그 남자 내외는 그저 허드렛일과 심부름에 여념이 없다. 그 남자 모습에서 권정생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학상 상장과 상금을 들고 안동 조탑리까지 내려온 윤석중 선생 일행에게 상 받기를 거절하였던 그 겸손의 모습이.

  오늘날 가난한 문예운동가들이 몇 푼의 동 때문에 비굴해지며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는 모습이 스친다. 잠시 얼굴이 달아오르며 고개가 숙여진다.

  H 이사장 내외를 보면서, 문예단체에 협찬 조금하면 곱절의 예우를 받는 독지가들과는 대조적이다.

  오늘 탄생한 빛나는 수상 작품 역시 이 숲에 새겨졌다. 그 작품들은 동요로, 퍼포먼스로 맑고 푸르게 퍼져 울린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문예운동을 지원하는 H 이사장의 하얀 웃음과 함께 이상향의 동산을 채워가고 있다.

  문학관 둘레에 소나무를 타고 오르는 마삭 줄 꽃 넝쿨이 한결 아름답고 향기롭다. 그래서 그 꽃말이 ‘하얀웃음’인가보다. 산길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하얀 웃음들이 동시·동화의 숲 여기저기에 피어나고 있다.

장  사  현
장 사 현

 

청하문학상, 한국문인문학상 본상, 봉화군예술인상 등 수상

저서 ' 수필문학의 이론과 창작기법', '자서전 쓰기의 정석' 등

영남대학교 사회교육원 문학예술과정 교수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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