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의 동백꽃
다산초당의 동백꽃
  • 이승한
  • 승인 2019.01.3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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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승   한

  다산초당의 동백꽃

  다산초당 연못 위에 자신을 놓아버린 동백꽃이 처연하다. 붉게 피어나 열정을 불태우다가 송이 째 떨어져 더욱 붉어진 동백꽃이다. 40이라는 젊은 나이에 벼슬에서 쫓겨나 이곳에 유배 온 다산은 떨어진 동백꽃에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을까? 초당에서 동백을 가까이 두었던 그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유배지에서 다산의 삶은 떨어져 더 붉어진 동백꽃과 많이 닮아있다.

  다산초당의 주변은 차나무와 동백나무로 가득하다. 짙푸른 이파리 사이에서 동백꽃이 시리도록 붉다. 향이 없어 벌 나비를 유혹할 수 없는 동백꽃은 붉은색으로 동박새를 불러 열매를 맺는다. 관직을 잃고 유배 온 다산에게 실학을 배우려고 모여든 제자들은 향기 없는 꽃을 찾은 동박새이려나? 가없는 제자사랑으로 다산은 관직에 있을 때 하지 못했던 많은 제자를 배출할 수 있었다. 나무에 피어있는 꽃보다 떨어져 물 위에 피어 있는 꽃이 더 많다. 다산은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꽃목걸이를 만들 듯 관리들의 도리와 민초들의 삶의 지혜를 모아 제자들과 함께 많은 저술로 실학이라는 꽃을 피워 열매를 맺기에 이르른다. 한이 없는 유배가 어디 있으리? 떨어져 누운 꽃이 나무에 달린 꽃을 그리워하듯 형기도 없고 앞날도 예측할 수가 없는 황량한 유배생활에서 정겹게 만날 수 있는 백련사 주지 혜장 스님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마음에 기대어 외로움과 절망을 삭힐 수 있지 않았을까? 유배지에서 다산은 동백꽃을 닮은 열정으로 많은 제자들을 교육하고 수많은 저술활동을 통하여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19세기 초 조선은 봉건시대가 붕괴되면서 근대사회가 성립되는 시기였다. 천주교와 서구과학이 들어와 서양문물의 전래로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지각변동의 시기였다. 천주교에 접했다는 것이 죄가 되어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와 절망과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어찌 그냥 헛되이 사시려 하는가? 제자라도 가르쳐야지?”하는 주모의 얘기에 자신을 추스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기거하는 방 앞에 생각과 용모,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는 다짐인 사의제(四宜齊)라는 현판을 붙이고 6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초당으로 거처를 옮긴 후에는 더 많이 제자들이 모여들어 18명을 두게 되었다. 첫 제자인 황산에게 써준 “공부에 파고드는 방법은 근면함이요, 학문을 뚫는 방법은 근면함이요, 학문을 닦는 방법 역시 근면함이라.”라는 삼근계는 영특함보다 근면함을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 가르침을 따라 근면하게 살아온 많은 제자들이 있어 그의 학문은 더욱 빛을 낼 수 있었다.

  다산은 떨어져 더 붉어진 동백꽃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유배생활을 저술로 불태우며 살았다. 처해진 환경을 극복하고 열정적으로 글을 남긴 모습에서 부러지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느끼게 한다. 강진 18년간 유배지에서 집필한 500여권의 책을 모두 논할 수는 없으나 시장, 군수와 같은 목민관이 지켜야 할 덕목, 나라 살림을 위한 토지제도의 개혁과 민생안전, 조선의 지리와 과학수사기법을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고 싶다. 바다의 조수간만의 차이가 달의 인력 때문에 일어난다는 해조론은 그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는 서적이다. 비록 작은 초당이었지만 오늘날 종합대학처럼 행정학, 사회학, 지리학, 법학, 공학을 모두 아우르고 있었다.

  다산이 추구한 학문은 실생활과 직결된 서구의 신학문으로 선비가 으뜸이고 장사를 가장 천한 직업으로 치부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 조선에서 상공업 진흥을 통한 부국강병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명치유신을 시작하여 상공업을 발전시킨 일본처럼 우리도 이때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 상공농사(商工農士) 순으로 생각을 바꾸었더라면 더욱 풍요로운 조선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직업에 귀천을 따지지 말고 파는 자, 만드는 자, 농사짓는 자를 중요시 여기고 선비는 이들을 지원하는 관료가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실사구시를 최고의 덕목으로 알고 실천하였다면 상공업이 발전되었을 터이고 사색당파와 일제의 식민지 지배도 없었을 터인데 하는 생각에 이르자 안타까움에 마음이 일렁인다.   
  자신의 호를 다산이라 하고 이웃 없는 유배지에서 혜장과 차 한 잔에 마음을 달랬던 다산. 귀양 온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다 곤욕을 치를지도 모르는 시절에 혜장 스님도 외로웠던지 비 내리는 깊은 밤 기약도 없이 다산을 찾아오곤 하였다. 다산도 연지에 떨어진 동백꽃과 같은 자신에게 글벗이요 말벗으로 갈증을 풀어주는 혜장 스님을 더욱 그리워하게 되었다. 연지에 떨어지는 동백꽃 소리에도 행여 혜장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지 밤 깊도록 초당 문을 열어두었다고 한다. 기다리다 못해 다산이 혜장을 찾아 나설 때는, 그를 만나러 가는 동백꽃 길은 설렘의 길이 되었으리라. 초당 입구에서 혜장을 찾아가는 백련사 오솔길을 따라 떨어진 동백꽃이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눈부시다. 차 한 잔에 밤을 지새워가며 학문을 토론하고 우정을 쌓아가던 두 사람의 인연도 그리 길지 않은 운명이었는지 혜장이 40에 열반을 한다. 혜장도 다산에게는 우정을 꽃피우다 가장 아름다운 날 송이채 떨어진 동백꽃과 같은 세한지우(歲寒之友)이었는가 보다.

  떨어져서 더욱 붉게 되는 동백꽃처럼 다산은 유배지에서 더 열정적인 삶을 살아 많은 제자를 배출해 내었고 끊임없는 저술을 통하여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혜장과의 우정을 쌓으며 절망을 이겨내고 유배생활을 인생의 황금기 인양 살았다. 연못 위에 떨어진 동백꽃 하나를 가슴에 품고 초당을 내려왔다. 선홍빛으로 내 가슴을 물들이고 싶은 바람이려나.  

  약력 -
  세종시(충남 연기) 출생.
  일본 도호쿠대학 공학부 토목공학과 졸업.
  일본 도쿄공업대학 대학원 토목공학과 졸업.
  공학박사.
  계명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2015년‘영남문학’수필 당선. 
  2018년 ‘시와시학’ 가을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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