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풍경소리 속에 시세계를 노래한다.
산사의 풍경소리 속에 시세계를 노래한다.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9.02.28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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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동리 여류시인 김도향씨
김도향 시인
김도향 시인

  김도향 시인은 1963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식장에서 10여 년간 신부 메이크업을 담당해 오던 것이 계기가 되어 웨딩샵을 열었다는 그는, 이후 2년여 동안 식당 경영이라는 이색체험에 도전하였으나, 끝내 김 시인은 소녀 시절부터 동경하여왔던 시 세계에 빠져나지 못하고, 지난 2010년, 작은 걸망 하나 매고 경산시 와촌면 대동리에 소재한 팔공산 자락의 한 작은 암자 천성암을 찾았다.
  김 시인은 하필이면 팔공산이었고, 또 암자였느냐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
 “팔공산 준령은 평소 내가 즐겨 찾아들었던 산이었고, 어느 날 문득 만나게 되었던 지금의 천성암은 나와의 첫인사에서 마치 꿈속에서 만난 듯 순식간에 제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20대 중반부터 동경하였던 김도향 시인의 시 세계는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하였고, 이로부터 2009년 『대구문학』등단과 팔공산 은적(隱迹) 7년만인 지난 2017년에『시와 소금』에 등단, 이후 1년 뒤인 2018년 3월 5일, 시인은“와각을 위하여(출판사 시와 소금)”라는 이름으로 그의 첫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시집은 모두 139쪽에 크게 4부로 나뉘어 있으며, 주옥같은 시인의 시심 속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어루만지는 능숙한 손길과, 시를 다루는 언어 하나하나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이나 관념에 적확하여 대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나름대로 구축하고 있었다는 시평을 받고 있다.
  내용 중 제1부에 “생각 끌고 가기”란 주제로, 완두콩 등 16편이, 제2부는, “바람경전”이란 주제로, 고무신 등 16편이, 제3부는 “어리연꽃”을 주제로, 수국, 낙수물 등 15편이, 제4부는 “수양버들 유사”란 주제로 손, 청개구리 울다 등 14편을, 말미에는‘견디며 건너는 피안의 길’이라는 발문시를 덧붙였다.
  이에 대하여 원로시인 복효근선생은 시평에서 김도향의 시적 상상력은 자유자재하며 무궁무진하다 하였으며, 마치 절간 추녀에 매달린 풍경의 양철물고기에서 죄 씻음의 속죄를 유추하는 것에서부터‘와각’위에 펼치는 파노라마적 상상력은 가히 현란하기까지 하다 하였고, 이에 김도향 시인의‘와각’은 우주를 들어 앉혀도 넉넉할 만큼 크고 넓다 하였으며, 시인은 현세와 내세를 넘나들고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높이와 깊이의 경계를 허물고 지구적 공간과 우주적 공간에 아예 경계가 없다 하였다. 또한 김도향 시인은 시적인 외형과 질서, 그리고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믿음직하게 여겨진다 하였으며, 이는 시인의 자유자재한 상상력에 바탕을 둔 것이라 평하였다.
그는 지난번 신인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소 한 마리 끌고 이제야 당도했다. 여름 해는 소 코뚜레에서 흘러나온 이까리처럼 길었다. 잔디풀을 먹어라. 쇠뜨기를 먹어라. 콩밭은 가지마라. 배추밭도 가지 마라. 어르고 달래다 도랑물로 목도 축였다. 날선 풀잎을 훌칠 때는 내 혓바닥에 피가 맺히고, 폭신한 쑥 잎을 씹을 때는 침이 한가득 고였다. 네 배가 남산만큼 불러오기만 기다릴 때, 내 뱃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었다. 뜯어도 뜯어도 뜯기지 않던 하루해가 지루했던지, 내가 소피를 보러 간 사이 홀연히 출가해버린 사문처럼 어디에서도 네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어둠을 몰고 온 동네 사람들이 손전등을 들고 산천을 뒤적이니, 산 하나 옮겨 앉듯 커다랗게 다가오던 너의 실루엣, 때론 무슨 심술보가 뻗쳤던지 내리막길을 내쳐 달릴 때면, 내 손바닥은 나일론 줄에 죄여서 쓰라리고 발바닥은 불꽃이 일었지. 그래도 나는 너를 한 번도 놓지 않았다. 늘어진 해를 씹어돌리 듯 되새김질하는 뻐꾸기의 염불소리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참 먼 길을 돌아왔다.”하였다.
그리고 김도향 시인의 깊은 시심 속에는 평소 꼭꼭 숨겨 담아둔 그만의 시세계이다. 시인이 필자에게 귀엣말로 들려준 이야기는 그의 시 세계를 가늠하는 시인만이 그릴 수 있는 한권의 일기책과 같았다.
 “혹자는 시가 시시해서 안 쓰고, 안 읽는다는 것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언 이십여년이 지나갔다. 초등학교 글짓기 시간에도 이궁리 저궁리 하다가 주어진 두 시간을 허비하고, 백지로 제출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시 쓰기를 1997년 우연찮게 만났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 공부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주 목요일은 빼먹지 않고 출석했다. 우등생은 출석 잘 하는 사람이 우등생이라고, 초등학교 6년 정근상을 최고 우등생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문우들은 6개월 배움에 백일장에서 장원도 하고 여성문학상도 수상하고, 일년만에 시전문지로 등단하는 사람도 있고, 육년만에 신춘문예로 화려하게 등단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둘 씩 떠나기도 하고, 한 달 배우다가 일주일 배우다가 떠나는 사람도 있고, 밀물 썰물 드나들듯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지만, 나는 우직 할 정도로 십여년을 버텼다.‘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쓰다보면 물미가 터진다.’하시던 은사님 말씀과 연말이면 전국 신문 신춘문예 삼사십군데 투고해라....”
  오늘도 김 시인은 9년째 팔공산 천성암에서 새벽 4시에 스님에 독경 소리에 맞춰 팔공산을 노래하고, 작열하게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그만의 시세계를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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