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용계서원 춘향제 봉행

  • 기사입력 2019.04.29 16:41
  • 최종수정 2019.05.03 16:41
  • 기자명 김종국 기자
▲ 기해년 용계서원 충현사에서 봉행된 춘향제
▲ 기해년 용계서원 충현사에서 봉행된 춘향제

  지난 4월 19일(음 3월 15일)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 소재 용계서원에서 임란 공신인 자인 최문병 의병장을 추모하는 춘향제가 엄숙히 봉행 되었다.
  이날 향사에는 지역유림 및 영천 최씨 문중 후손 등 7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초헌관에 최재림(83, 전 하양향교 전교) 아헌관에 유학 김교언, 종헌관에 유학 전준수씨가 소임하였고, 집례(執禮)는 유학 이영국씨가 각각 맡았다.
  성재 최문병 선생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일장(日章)으로, 자인향교 유생으로 향리에 살면서 학문에 힘쓰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구 자인현역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천장산(千丈山)에서 적의 침입을 격퇴하였으며, 다시 청도의 의병장 박경전(朴慶傳)과 합세하여 두곡(杜谷)·선암(仙巖)·가지현(佳旨縣) 등지에서 적을 무찔렀다 하였다. 이후 다시 권응수(權應銖)와 합세하여 영천의 적을 물리친 공으로 1593년에는 동지중추부사 박진(朴晋)의 상주로 인하여 감목관(監牧官)이 되었으며, 뒤에 한성부우윤에 추증되어, 자인면 원당리에 소재 충현사(忠賢祠)에 제향하여 온 경산지역의 대표 임란 창의 의병장 중 한 분이다.

  성재 선생의 신위를 모신 용계서원은 1700년(숙종 26)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최문병(崔文炳)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의사(倡議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2년에 용계서원으로 변경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4년 사림의 공의로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묘우(廟宇), 신문(神門), 6칸의 강당, 1칸의 전사청(典祀廳),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정문(正門), 6칸의 주사(?舍) 등이 있다.
묘우인 선현사(先賢祠)에는 최문병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경재당(敬齋堂)이라 현액되어 있으며, 동편의 협실은 헌관실로 사용되고 마루는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등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는 재석 및 유사실로, 서재는 제원 및 유생들이 기거하면서 공부하는 장소로, 전사청은 향례 때에 제수를 장만하여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주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庫子)가 사용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2,200평, 대지 500평, 임야 200정보 등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자료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