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살아온길] 성균관 청년유도회 경산지부 조재환 회장의 이색 삶
[이 사람이 살아온길] 성균관 청년유도회 경산지부 조재환 회장의 이색 삶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9.07.0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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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전문가에서 경산시 청년유도회 회장으로 거듭나
▲ 자신의 걸어온 길을 회고하는 조재환(64) 회장
▲ 자신의 걸어온 길을 회고하는 조재환(64) 회장

  조경전문가로 알려진 조재환(64) 대표의 공식명함은 ㈜경북식물원 대표, 대구광역시 조경협회장, (사)한국조경수협회 대구·경북회장, 사단법인 녹색환경연합회 중앙회 수석 부회장, 창녕조씨 경상북도 종회회장, 화성장학회장, 국제로타리 3700지구 천마로타리 회장, 그리고 성균관 청년유도회 경산지부 회장 등, 그가 맡은 직책은 전 현직을 포함 무려 20개에 달한다.

  조 회장의 고향은 전국 종묘생산의 70%를 상회하는 경산종묘산업특구 지역인 경산시 하양읍 환상리이다. 그는 1955년 을미(乙未) 생으로, 가난한 한 농부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저는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합니다.”
  필자와 인터뷰 중 이 말을 시작으로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한집에 부모님과 8남매가 모여 살았으니, 밥때마다 내게 돌아오는 반찬은 생각도 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는 젓가락질이 서툴다고 토로하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조 회장은 어린 시절 화성초등학교와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하였다.

  조 회장은 신라 진평왕의 부마(駙馬) 조계룡(曺繼龍) 공을 시조로 37대손이며, 고려 문신으로 충혜왕 때 대호군(大護軍), 제주 안무사(安撫使), 공민왕 때 찬성사(贊成事), 좌정승(左政承)을 거쳐 하성부원군(夏城府院君)에 이르렀던 양평(襄平) 조익청(曹益淸)의 16대손이다.0

▲ 경북 경주시 안강읍 노당2리에 소재한 창녕조씨 시조 공 묘역
▲ 경북 경주시 안강읍 노당2리에 소재한 창녕조씨 시조 공 묘역

  창녕조씨(昌寧曺氏) 시조인 조계룡(曺繼龍) 공은 신라 26대 진평왕(579~632)의 사위로, 그의 어머니는 한림학사(翰林學士) 이광옥(李光玉)의 딸 예향(禮香)이라 전하며,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당시 창녕현 고암촌(鼓岩村)에서 태어난 예향이 성장하여 혼기(婚期)에 이르렀는데, 우연히 복중(腹中)에 병(病)이 나자, 화왕산(火旺山) 용지(龍池)에 가서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기도를 올리니, 신기하게 병(病)이 완쾌되었고 몸에 태기가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속에 장부(丈夫)가 나타나“이 아이의 아버지는 용(龍)의 아들 옥결이다. 잘 기르면 자라서 경상(卿相)이 될 것이며, 자손만대(子孫萬代)로 번영할 것이다”라 하며 사라졌다 한다. 그 후 달이 차 아이를 낳으니 용모(容貌)가 준수(俊秀)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겨드랑이 밑에 조(曺)자와 흡사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하는데, 이것을 본 이학사(李學士)가 이상히 여겨 왕(王)에게 사실을 고하니, 왕도 기이하게 생각하며, 그의 성(姓)을 조(曺)씨로 사성(賜姓)하고,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하사(下賜)하였다고 전한다.
  조재환 회장은 이러한 설화를 토대로 창녕조씨는 현재까지도 화앙산 정상의 용지를 창녕조씨 득성지(得姓池)라 하여 이를 신성시하고 있다 하였다.

▲ 화왕산 정상에 보존된 창녕조씨 득성 설화 현장
▲ 화왕산 정상에 보존된 창녕조씨 득성 설화 현장

  이와 같은 득성(得姓) 설화를 간직한 창녕조씨 시조 공의 37대손인 조 회장은 22살이 되던 해 결혼한 후, 막내로써 고향 땅을 지키며 서른 살이 되던 해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만 했다. 이후 우연스럽게 조경(造景)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고향 환상·대조리 일대에서 생산되는 각종 묘목을 납품하는 일에 종사하게 되었던 것이 오늘에 ㈜경북식물원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결혼하고 특별히 계획한 것도 없이 부모님만 모시고 살았던 우리 내외는 앞이 캄캄하였습니다. 그때 마침 마을에서 생산되는 묘목들이 보이더군요.”
  당시 조 회장이 묘목 납품 사업을 결심할 당시만도 마을 주민들은 자신의 고향 환상·대조리 일대가 오늘날 경산 묘목의 중심지가 될 줄은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도 역시 어린 시절에 간혹 양친으로부터 전해 듣기로,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대조리에 일본인 과수 접목기술자“고바야시”가 들어와 뽕나무 묘목을 생산하게 되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마을 영세농들이 호구지책으로 그를 따르게 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뽕나무 재배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는데, 실상을 알고 보니 일정(日政)이 군수 산업 정책의 하나로 누에치기 사업을 전개하면서 일본인“고바야시”가 지금의 환상·대조리 일대에서 상묘(桑苗) 재배를 위해 정책적으로 선봉에 선 것이라 전해 들었고, 이로써 일대 5,000여 평의 농지에 상묘 재배가 본격화되면서, 1914년 이후에 “시누하라 사키마토”등이 그 자리에 사과단지를 조성하고, 사과 묘목재배와 유실수 접목기술 등을 보급하여왔던 것이 현 종묘산업특구의 근간이 되었다 하였다.
  조 회장은 그로부터 지난 20여 년간 묘목 납품과 조경사업에 참여하면서 여러 차례 시행착오와 부도의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으나, 그때마다 아내의 내조가 큰 힘이 되었다는 조 회장은, 50대 초반에 들어 조경기사 자격 취득과 함께 직접 작업 현장에 뛰어들었던 계기가 곧 오늘에 ㈜경북식물원을 정상 궤도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자평하였다.
  또한, 그는 50대 초반에 유림에 입문, 하양향교 유생으로 인(仁)과 예(禮)를 숭상하면서, 충효의 고장 하양에서 임란 창의 의병들의 충의와 효자·효부· 열녀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인의예지를 몸소 실천하겠다는 각오로 지금의 성균관 청년유도회 일원으로 입문하여 오던 중, 지난해 경산지부 회장직을 수락하였다고 했다.

▲ 2019년 제1차 경북선비문화 경산포럼을 주관한 조재환 회장
▲ 2019년 제1차 경북선비문화 경산포럼을 주관한 조재환 회장

  취임 이후 조회장은 지난 4월 28일에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2019년 제1차 경북선비문화 경산포럼을 열고, 전문가를 초청, 경암 허조(許稠) 선생의 선비정신과 한국 정신문화의 고장 경산에 대한 특강을 개최함으로써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조재환 회장은 이 자리에서 환영사를 통하여 삼성현이 탄생하신 정신문화의 고향 경산에서 경북 선비문화 경산포럼을 개최하게 됨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많은 지역 유림들의 참여와 지도 편달을 당부하였다.
  또한, 조 회장은 틈틈이 시간을 할애하여 관내 조경 현장을 두루 찾아 조경수의 발육과 생육 상태를 수시 점검하는 등, 오전에는 임당농장·남산농장, 오후에는 와촌농장, 그리고 크고 작은 지역유림들의 행사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의 일과는 하루가 12시라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라 피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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