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경산지역 둘레길 답사 및 세미나
팔공산 경산지역 둘레길 답사 및 세미나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9.07.01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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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학회·(사)팔공산문화포럼 관련 학자 참가
▲ 경산 팔공산 둘레길 걷기 행사에 참여한 학계 인사들
▲ 경산 팔공산 둘레길 걷기 행사에 참여한 학계 인사들

  경산학회(65, 회장 성기중), (사)팔공산문화포럼(62, 회장 홍원식), (사)나라사랑 연구회(회장 성기중) 공동 주최로 열린 이 날‘팔공산 둘레길 걷기 행사’에는 성기중 경산학회 회장을 비롯한 홍원식 계명대학교 교수, 전영권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등 20여 명의 학자가 참여한 가운데 경산 시계에 조성된 팔공산 북계(北界) 원효암→범어 고개→천성암→원효암에 이르는 약 20여 km(미 개설지 포함) 둘레길 및 예정구간을 오르내리면서 일대의 둘레길 조성 필요성과 설치방안 등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누었다.
 

전영권 교수가 설명하는 수직 절리 형식의 변성 퇴적암 형상
▲ 전영권 교수가 설명하는 수직 절리 형식의 변성 퇴적암 형상

  특히 이 구간은 경산의 삼성현중 한 분이신 원효(元曉) 성사와 화엄종의 개조이신 의상(義湘) 조사의 행적이 전승되는 구간으로 더욱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으며, 특히 천성암 일대에 분포되어있는 변성 퇴적암과 시루떡을 쌓아 놓은 듯한 수직 절리 형상 등은 보존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전영권 교수(대구가톨릭대학교 지리학 전공)의 현장 설명에서 뜻을 함께하였다.
  전승되는 일대의 설화에 의하면, 630년경 당시 의상(義湘) 스님이 등 너머 원효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팔공산 일대를 두루 섭렵하던 중 문득 널찍한 바위가 군을 이루고 있는 현 천성암 일대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서 수도 정진하던 중 원효 스님과 함께 당나라로 구법 길에 나섰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지방 구전과 전설로만 전승될 뿐, 이를 입증할 수 있는 남아 있는 문헌이나 자료는 찾아볼 수 없는 안타까움 또한 없지 않다.
이러한 설화 등은 원효·의상 간의 역사적 라이벌 관계를 재구성하는 설화적 양상으로, 설화적 모티프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와 이에 따른 흔적 또한 예사롭지만은 않다.

  답사반은 구간 내 급경사 지역과 반복되는 능선 사이를 오르내리면서 이를 기획하는 관계 기관의 더욱 적극적인 현장참여가 요구된다고 강조하였다.
  이를테면 구간 내 쉼터와 가파른 구간의 난간대 및 밧줄 설치 등과 같은 사소한 사안에도 면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지적하였다.
  또한, 이야기가 있는 구간에는 스토리보드를 설치하여 이를 찾는 등산객들에 대한 무료함을 달래주는 구상도 마땅히 기획 기관의 몫이라 덧붙였다.
  팔공산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영남의 알프스요, 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구간을 답사하면서 문득 현장에서 머무는 원효·의상 간의 선문답과 힘겨루기 설화 한 토막을 생각해 보았다.
그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하다면 아마도 희대의 고승 원효·의상 간의 이야기로는 충분한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인면 소재 재석사 원효성사전에 벽화로 남아 있는 원효 의상 스토리 벽화
▲ 자인면 소재 재석사 원효성사전에 벽화로 남아 있는 원효ㆍ 의상 스토리 벽화

  [설화 요약]
  하루는 의상(義湘)이 자신이 수도하는 암자에서 원효(元曉)에게 사람을 보내 점심 초청을 청했는데, 사실인즉, 의상대사는 하루에 2끼 식사를 하는데, 매식마다 자신이 직접 밥을 지어 먹지 않고 그때마다 하늘에서 내리는 천공(天供)을 받아먹었다 하며, 반면 원효대사는 자신이 직접 밥을 해 먹었다고 한다.
  이에 의상대사는 자신의 위세를 원효에게 과신하여 기를 꺾기 위하여 원효를 초청하였다는데, 원효는 이러한 속셈인 의상의 점심 초대에 아무런 연유도 묻지 않고 쾌히 승낙하였다 한다. 한편 의상은 선녀에게 미리 당부하여 다음 날 약속 시각에는 두 그릇의 공양을 보내주도록 당부했다.
  선녀(仙女)는 의상의 당부에 당일 차질없이 거행할 것을 언약하였고, 의상 역시 몇 번이나 이를 다짐하였다.
  약속한 날, 원효는 예정대로 천성암을 방문하였고, 의상은 계획대로 이를 진행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정오가 넘도록 미리 약속하였던 선녀(仙女)가 점심을 준비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친 원효는 천성암을 떠났고, 의상은 안절부절못하며 뒤늦게 자신 앞에 나타난 선녀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이를 질책하였으나, 선녀는 이 외로 자신이 약속 시각에 도착하였을 때, 천성암 일대에 신장(神將)들이 지키고 있어 감히 들어 올 수가 없었다 하였다.
  그제야 의상은 무릎을 치며, 자신이 원효를 시험하려 했던 어리석음을 뉘우쳤다 하였다(참고문헌 : 경산의 민담과 설화).
설화의 형성과 초기 전승 시기는 630년대로 유추되고 있다.

  이 설화는 중국의 고승 도선과 의상 사이에 당나라 구법 시에 있었던 설화와 유사하나, 경산에서 태어난 원효 역시 동방에 뛰어난 고승임을 나타내는 한 일화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 또한, 한 시대 두 고승이 남긴 무언(無言)의 메시지로, 우리가 남겨야 할 소중한 무형적 유산(遺産)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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