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압량주(押梁州) 군주와 무명용사 추모제 봉행
신라 압량주(押梁州) 군주와 무명용사 추모제 봉행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9.10.2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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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불 의식의 추모제와 천도의례
▲ 유·불 의식의 추모제와 천도의례

  지난 10월 17일 오전 10시, 신라 압량주 군주 및 구국 무명용사 임시 제례보존회(회장 김윤근, 82, 관란서원 원장) 주관으로, 경산시 압량면 소재 마위지 근린공원 누각에서 지역에 뜻을 같이한 인사와 유림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와 천도(薦度) 의식이 엄숙히 봉행 되었다.

 “時 庾信 爲押梁州軍主 若無意於軍事 飮酒作樂 屢經旬月 州人以庾信爲庸將 譏謗之曰 衆人安居日久 力有餘 可以一戰 而將軍?惰 如之何 庾信聞之 知民可用 告大王曰 今觀民心 可以有事 請伐百濟 以報 大梁州之役 王曰 以小觸大 危將奈何 對曰 兵之勝否 不在大小 顧其人心何如耳 故紂有億兆人 離心離德 不如周家十亂同心同德 今 吾人一意 可與同死生 彼百濟者不足畏也 王乃許之 遂簡練州兵赴敵”

  이는《삼국사기》열전 제1 김유신 상편에 수록된 내용으로, 군주(軍主) 김유신 장군과 압량주 주병(州兵)들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개략적으로 요약하면, 장군이 군주로 있을 때, 그는 마치 군사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이 술을 마시고, 풍악을 즐기며, 달포를 지내니, 주위 사람들이 김유신을 용렬한 장수로 여겨 비방하며 여력을 보이자, 김유신이 왕에게 나아가 압량주(押梁州)의 민심을 살펴보니, 이제 일할 만하다 하고 징집(徵集)을 청하자, 이에 허락받고 드디어 주병을 뽑아 훈련해 적진에 나갔다 하였다.

▲ 추모제 봉행 이후 함께한 제관 및 참례자
▲ 추모제 봉행 이후 함께한 제관 및 참례자

  앞에《삼국사기》기록에서, 640년 백제에 함락된 대야성(大耶城)을 되찾기 위해 당시(642년, 선덕여왕 11), 신라 조정이 김유신을 압량주에 군주(軍主)로 보냈고, 김유신이 군주로 부임하였을 때 주민(州民)들은 신라에 대한 반감으로 그들 반겨 주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김유신이 그들과 소통하는 지략(智略)을 모색(摸索)하였다는 점은 오히려 반전의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로써 김유신과 압량주병들의 구국대열은 군사적으로 백제와 중과부적(衆寡不敵) 이었던 대야성(大耶城)을 645년에 탈환(奪還)하기까지는 당시 압량주병(押梁州兵)의 피해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없지 않다. 이날 봉행한 제의(祭儀) 또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추모의례로, 뜻을 함께하고자 한 헌관(초헌관 정호완, 아헌관 허규현, 종헌관 전병견) 이하 제관, 참례자 다수의 진솔함이 묻어나 있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천기찬(성균관 전의) 씨 외 10여 명의 자인향교와 관란서원 유생(幼生), 뜻있는 지역 인사들의 자진 헌금(獻金)으로 제수(祭需)를 마련하고, 참례(參禮)하였다는 점은 향토 사랑에 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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