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 관란서원 추향제와 김윤근 신임 원장 취임
기해년 관란서원 추향제와 김윤근 신임 원장 취임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9.10.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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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란서원 안인사에서 봉행된 추향제
▲ 관란서원 안인사에서 봉행된 추향제

  지난 10월 7일(重九日:음 9월 9일), 경북 경산시 용성면 미산리(서원천로 268-21)에 소재한 관란서원(觀瀾書院) 안인사(安仁祠)에서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기리는 추향제(秋享祭)를 엄숙히 봉행했다.
  이날 향사(享祀)에는 천기찬(千基燦) 성균관 전의(典儀), 자인향교 전 현직 전교(典校)(손석호, 박인수, 배현묵), 박광택 면장, 경산학회 성기중(경산전략발전위원회 창의 문화도시 분과위원장) 회장, 김영옥 전 경산문화원장, 및 지역유림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초헌관(初獻官)에 김윤근(金閏根 81), 아헌관(亞獻官)에 최의섭(崔義燮 79), 종헌관(終獻官)에 남성래(南聖來 74), 집례(執禮)에 이순기(李淳基 73), 축관(祝官)에 천두문(千斗文 73) 씨가 각각 소임했다.

  본 서원은 2005년 4월에 세운 관란서원(觀瀾書院) 안인사(安仁祠) 건립기에 서, 관란서원은 1660년(현종 1)에 회재(晦齋) 선생의 학문과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조선 시대 그의 후학 이승증(李承曾), 채구장(蔡九章), 장시하(蔣時夏) 등과 지방 유생들이 맹구대(盟鷗臺)에 올라 백구(白鷗)를 벗 삼아 회재 선생을 그리며, 성리학(性理學)을 수학하였던 곳이라 하였고, 서원의 옛터에 맹구대(盟鷗臺)와 삼회당(三會堂)이 있어 관란(觀瀾)이 강론하였다 하며, 그 뒤 1715년(숙종 41)과 1743년(영조 19)에 사당을 중수하였고, 1868년(고종 5)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0년 맹구대와 삼회당이 있던 자리에 건물을 복원하여 서당으로 활용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의 서원 건물은 1910년 중창한 후 현판은 1923년 후학 윤현기(尹玄基)가 적었으나, 서원에는 편액만 걸려 있고, 사우(祠宇)가 없어 이후 지역 유림들의 간곡한 청원으로 당시 천기찬(千基燦) 원장이 2004년 5월 19일, 이전의 단소(壇所)를 훼철하고, 그 동향(東向)에 사우(祠宇)를 세우고 회재 선생의 저서 구인녹권(求人錄券)과 논어의 이인편(里仁編)의 뜻을 새겨“안인사(安仁祠)”라 명명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1년에 간행된 경산군지의 제영(題詠) 편에 의하면, 관란서원과 관련한 맹구대(盟鷗坮)에 대한“在元慈仁觀瀾川邊 宣祖朝徵士李觀瀾承曾講道其上 隱不就徵 因名盟鷗”의 기록에서 관란 이승증(李承曾) 선생이 맹구대에 남긴 시 음흠(原歆) 1~2편에서 회재 이언적 선생에 대한 애절함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서원 입구의 맹구대와 그 아래 반구대에 새긴 관란(觀瀾) 선생의 시구(詩句)와 채구장(蔡九章), 장시하(蔣時夏) 등이 새긴 7편의 시구가 20여 년 전 자인~용성간 오목천 우회 도로 개설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으니, 옛 선현들의 소리는 들리나 사람은 잇지 못해 그리움만 가득할 뿐이다.

  이날 향사(享祀)에 초헌관 소임(所任)을 맡은 김윤근(金閏根) 씨가 신임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이에 대한 관란서원에 거는 기대 또한 크지 않을 수 없다.
  신임 김윤근 원장은 경산시 용성면 용전 출신으로, 김해 김씨 시조 김수로 대왕의 71세손으로, 1938년생이다.
  그는 토박이 용성면 용전리 출신으로, 평소 위선사(爲先事)로 대구가락종친회 부회장, 용성면 종친회장 등을 맡아 오면서 현재 고향마을에서 승원농장을 직접 경영하는 전문 농업인이기도 하다.
  김 원장은 이날부터 향후 2년간 관란서원 원장 소임을 수행하게 된다.

  1997년에 편찬된 경산시지(慶山市誌) 유교 유적편에 의하면, 1798(정조 22)년 자인읍지도록기(慈仁邑誌圖錄記)란 수사본(手寫本)을 인용, 이후에 세워진 자인현(慈仁縣)의 서원(書院)·사당(祠堂) 등 자인 고을에 제수(祭需) 기타 경비 일체를 담당했던 서원(書院)·사우(祠宇) 중 관란서원(觀瀾書院)이 가장 수서원(首書院)의 대접을 받았고, 사직제(社稷祭)를 비롯한 향교(鄕校) 및 타 서원(書院)·사우(祠宇)의 춘·추향에 관란서원 원장이 반드시 종헌관(終獻官)이 되도록 명문화되어 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경산시지, 1997, p.1121).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는 많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전통 의례를 계승할 수 있는 젊은 층의 참여와 사회적 관심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계승하고 있는 지역 유림이 대부분 70~80대에 이르고 있으니, 언제까지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켜나가고 계승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자인지역은 천기찬(千基燦) 성균관 전의(典儀)와 같은 뜻있는 유림이 그 맥을 계승하고 있지만, 팔순 초반을 넘긴 천 전의가 언제까지 이를 지켜나갈 것인가 하는 것 또한, 우리가 고민하여야 할 과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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