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새시 제작 사장에서 포도 농군으로

  • 기사입력 2021.05.18 22:46
  • 기자명 김미숙
김미숙
김미숙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 백의개 씨는 남산 전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곳에서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냈고,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부모님은 그가 농사를 지으면서 고향을 지켜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농사보다는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사람 많은 도시에서 보란 듯이 일을 해서 성공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죽도록 일을 했지만 지독한 가난은 좀처럼 나아지지가 않았다.
 “농사도 앞으로는 비전이 있을 게다.”
  도시로 떠나는 그와 마주 앉은 아버지가 한 마디 던졌다. 농촌도 언젠가는 잘살 때가 있으니 우리가 앞장서 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는 농촌이 잘살 길은 막막하다고 여겼고, 아버지의 그런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도시로 나온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 아파트를 짓는 데 필요한 새시를 설치하는 일이었다. 서른이 되지 않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운이 좋았던지 시작하자마자 번창했다. 여기저기에 아파트가 치솟을 때마다 일감이 밀려들었다. 전국 어디든지 일이 있으면 달려갔다. 일감이 늘어나자 끼니를 굶는 날이 많았지만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한 명이던 직원이 두세 명으로 늘어났고, 여섯 명이 되었다. 회사의 외형이 커지면서 수입도 몇 배로 많아졌다. 빈손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대기업도 부럽지 않을 판이었다.
  IMF를 지나면서 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업이 번창할 때와 마찬가지로 줄어드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일감이 줄어들고 그동안 작업해 놓았던 대금마저도 거두어지지 않았다. 벌어 놓았던 돈은 점점 줄어들고 여섯 며이 되는 직원들의 월급마저 걱정이 되었다. 월급날이 되어서 직원들 손에 봉투를 주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 어떻해요?”
  러시아에서 일하러 온 직원이 한 말이었다. 빈손으로 집에 가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와 딸에게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으미 서늘해졌고 앞날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까마득해졌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지쳐 갔다.
  그 즈음 몸에 이상이 생겼다. 가슴이 답답하고 먹은 음식물이 소화가 되지 않았다. 십이지장이 좁아져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위에 혹 하나가 떡하니 붙었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곧바로 치료에 들어갔다. 의사는 수술이 잘되었다고 했지만 그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다시 검사에 들어갔다. 내시경 시술이 잘못되어서 재수술을 하는 고통까지 견뎌야 했다. 그는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고향을 찾았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하늘과 땅은 여전히 그대로 였다. 언제 찾아도 편안한 안신처였다. 그는 15년 동안 일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밀렸던 직원들 월급과 퇴직금을 계산했다. 거래처의 결제를 마무리하니 수천만 원의 빚과 아픈 몸뚱이만 남았다.
  고향에 돌아오니 한두 집 짓던 포도 농사는 마을 전체로 번져 대농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성공했다는 친구 몇 명도 회사를 그만두고 농부가 되었다. 농사에 비전이 있다는 것을 친구들은 먼저 알아챘다. 그는 아버지가 짓던 포도 농장을 훑어보았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고향임을 그때서야 느꼈다. 땅을 소중하게 여겼던 아버지의 농장에는 풀이 무성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겠다고 했던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상일에 유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에 들어서야 아버지의 말씀이 명언임을 깨달았다. 그 옛날 아버지가 고향을 지키면서 농사지으라고 하셨던 말씀을 그때는 왜 귀담아듣지 않았을까 통곡하며 후회했다. 이듬해 그는 포토밭에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비 가림을 하기위해서였다. 병충해를 막고 포도가 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었다. 새시 설치하러 다니던 일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웠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는 새벽동이 트기 전부터 늦은 저녁 때까지 농장에서 살았다.
  그렇게 시작했던 농사는 혼자서 하기 벅찰 정도로 늘었다. 세상에 어디 쉬운 게 있을까마는 그는 6년째 3,400평의 거봉 농사를 짓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초보 농군에 지나지 않는다. 농사는 한 해 한 해 지을수록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모르는 것이 있다면 자신보다 먼저 시작한 농부에게 묻기도 하고 기술센터에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천국이 따로 없다.” 농사짓고 있는 고향의 땅이 아름다운 천국이며 휴식처라고 그는 말한다. 시골은 농번기가 되면 눈코 뜰새 없이 바쁘고 힘들지만 농사만큼 마음 편한 직업도 없단다. 까많게 그을린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 그의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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