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농군 진원 씨
억대 농군 진원 씨
  • 김미숙
  • 승인 2021.08.0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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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숙
김미숙

  젊은 농부 최진원 씨는 경산시 고향이 아니다. 하지만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에서 이십여년 가까이 아이들을 낳아 키웠고, 농사를 짓고 살았으니 고향과 별반 다름없다. 그의 나이 올해 지천명에 들어섰다. 농사짓는 나이로 보아서는 젊은 축에 들어간다. 대부분 퇴직을 하고 농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농사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이런저런 사연이 있다. 젊은 시절 잘나가던 사업이 부도를 맞았고, 보증까지 잘못 서는 바람에 느닷없이 인생에 먹구름이 몰려 왔다.

  그는 군 제대를 하자마자 이불 도매상을 하게 됐다. 전국을 무대로 동분서주 뛰어다녔다. 지갑에는 현금을 두둑하게 넣어 다니면서 물 쓰듯 살았다. 세상이 온통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 들었다가 원단을 염색하는 것을 보게 됐다. 염색하는 것까지 손을 대면 지금보다 몇배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곧장 염색사업에 손을 뻗쳤다. 하지만 자신이 염색한 원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원단에 얼룩이 생겨서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이불을 판매한 돈으로 원단을 다시 사들였지만 마음먹은 대로 염색이 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새로 작업을 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부도를 맞았고 보증까지 서면서 하던 일을 정리하게 되었다. 욕심이 화를 불렀다.

  그는 보증을 서 줬던 친구와 한집에 살았다. 친구는 자신의 잘못으로 부도를 내고서도 백화점을 들락거렸지만, 그는 보증을 섰다는 이유로 매달 이백만 원씩 갚아야 했다. 월급을 받으면 한 푼도 써 보지 못하고 그대로 남의 손에 넘겨줘야 하니 가슴이 쓰렸다. 옳은 사람살이 하나 없는데다가 게딱지처럼 붙러 있는 차압 딱지를 볼 때면 울화가 치밀었다. 키우던 네마리의 개도 손대지 말라는 경고장을 봤을 때는 가슴이 미어졌다.

  그는 도피 샌활로 원양 어선을 탔다. 돈에 시달리다 보니 숨어 있을 곳을 찾은 것이다. 몇 개월 동안 배를 타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택시 운전을 하게 됐다.

  십여 년의 세월은 그야말로 악몽이었다. 숨을 쉬고 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의 월급은 고스란히 보증 선 대가로 넘어 갔다. 아내가 번 돈으로 겨우 생활을 했으니 삶에 재미가 붙을 리가 없었다.

  그는 모든 생활을 접고 평산에 들어왔다. 그에게 집주인이 포도와 복숭아 농사를 지어보라고 했다. 밤에는 택시 운전을 했고 낮에는 포두 순을 땄다. 콩만큼 자란 포도 알맹이도 속아냈다. 농사라곤 처음 해 보았지만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농사가 즐거웠다. 일하는 즐거움 뒤에 그동안 그끼지 못했던 행복함이 밀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첫해 육백 평 지은 농사가 대박을 이루었다. 팔백만 원이라는 거금이 통장으로 입금됐다. 신이 난 건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이듬 해 농사는 실패였다. 그해는 날씨가 고르지 않아 병 해충의 피해를 많이 봤다. 그때 그는 알았다. 농사는 어느 정도 하늘이 도와줘야 잘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이듬해에 이웃으로부터 노는 땅 구백 평을 무상으로 임대했다. 산비탈이어서 오르내리는 것만 해도 헉헉 숨이 찼다. 게다가 가시덤불로 우거진 밭이었다. 하늘이 보이는 비탈은 고개만 들어도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그는 아내와 어린 묘목을 심었다. 나무을 부지런히 가꾸고 보살폈다. 해가 거듭될수록 나무는 대견스럽게 우뚝 자랐다.

  오 년째 접어들던 해였다. 국가에서는 FTA 협상으로 과수 폐원 지원 사업상 복숭아 나무을 뽑으면 보상을 해 준다고 했다. 밭 주인은 보상을 받기 위해 한창 수확할 복숭아 나무를 뽑아냈다. 그는 몇 년 동안 나무를 키운 보람도 없이 말 한마디 못하고 주인에게 빼앗겼다. 농사짓는 이십 년 가까이 그런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태 전에는 복사아밭 오천 평을 농사짓게 되었는데 다음해 주인은 말도 없이 계약을 파기했다. 토양 개량제와 유기질 비료를 듬뿍 뿌려 놓았는데 한마디 말도 없이 다른 사람과 계약을 해버렸다. 복숭아 농사가 잘되니깐 없는 사람을 상대로 세를 더 받으려고 그랬던 것이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 소독할 때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만오천 평 되는 과수원을 소독하려면 일주일 이상 걸렸고, 온도와 습도가 높은 날 약을 치면 숨이 턱턱 막힌다고 했다. 농사는 소독과의 전쟁이다. 얼마만큼 병해충을 잡느냐에 따라서 농사를 잘 짓는가에 대한 판가름이 난다.

  몇 년 동안 그들 부부가 농사짓는 것을 보면서 그보다 아내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늘 긍정적이고 밝은 미소로 남편의 일을 묵묵히 도와주는 그의 아내는 타고난 일벌레다. 같이 일하는 날이면 손이 얼마나 재빠른지 흉내도 내지 못한다. 남편과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투정을 커녕 오히려 일 욕심을 더 많이 낸다. 그 덕분에 이십년 가까이 땅 한평 없이 농사를 짓던 그들은 삼년 내리 땅을 사서 자신의 명의로 올렸다.

  젊은 날 부도가 나고 보증을 섰던 것은 그의 인생이 걸림돌이었지만 긴 인생을 볼 때는 디딤돌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젊었을 때 닥쳐왔던 시련이 지금까지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고 한다. 앞으로 그는 농사에 관한 정보나 농업에 대한 어떤 것이라도 가르쳐 주는 곳이 있으면 달려 간다고 한다. 저 사람은 정말 농사꾼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포부라고 한다. 그는 이제 2억의 수입을 올리는 농사꾼이다. 농부라면 누구나 원하는 꿈이 아닐까. 그도 이제는 경산을 지키는 온전한 농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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