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설 문화와 행복경제 이야기

  • 기사입력 2022.01.26 11:11
  • 기자명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  천  익

  민족의 대명절 설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농경사회를 살아오던 우리 조상들이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는 날로 생각하던 음력 1월1일이 설날이다. 정월 초하루인 설날은 우리민족이 최고의 명절로 생각하는 날이다. 설은 추석과 함께 양대 명절로 생각해왔지만, 특히 설은 음력 새해가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갖고 있는 날이다. ‘설’자는 새해의 첫머리를 뜻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설의 기원을 찾으면 여러 가지 어원이 있으나 ‘한해를 시작하는 새해에 대한 낮 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날’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설날에 대한 또 다른 의미는 ‘선날’ 즉 ‘새날을 개시 한다’는 뜻도 갖고 있다. 이에 더하여 설날은 낯선 새해가 시작하니 ‘삼가 하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옛말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새로운 낯선 한해가 시작하는 새 질서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설날을 한자어로는 원일(元日), 원단(元旦), 세초(歲初), 연두(年頭) , 연시(年始) 등으로 사용하기도 하나 우리말의 설날이 가장 정감 있고 다양한 뉘앙스를 모두 수용하는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민족을 지칭하는 표현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는 백의민족, 또는 배달민족이라는 표현이 오랫동안 우리에게 사용되어 귀에 익어 온 말이다.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역법(曆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역법은 삼국지에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신라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가위나 수릿날이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 원류를 추측할 수가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공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 한식, 단오, 추석을 4 대 명절로 삼아왔다. 설날은 낯 설은 새해가 처음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시작을 알리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여러 가지 놀이나 세시풍속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차례, 세배, 설빔, 복조리 걸기,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이다. 설날의 중심행사는 차례지내기와 성묘이다. 설날에는 아침 일찍이 제상을 차리고 대창마루나 큰방에서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과 술로 조상님들을 대접하는 의식을 한다. 세배도 대표적인 의례 중의 하나이다. 마을 풍속에 따라 다양하지만, 아이들은 보통 이른 아침일찍 부터 일어나 꼬까옷이나 새 옷을 갈아입고, 친척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녔다. 어른들은 차례를 지낸 뒤 서로가 둘러 낮아 세배를 나누곤 했다.

  새해 첫날에 고운 색동옷이나 한복 또는 새 옷을 차려입고, 조상님들께 차례를 지내며 새해에 품고 있는 소망을 이루도록 기원하고, 좋은 일이 있게 해달라며 빌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친척 어른들에게 세배를 다녔다. 세배를 드리고 나면 대개의 조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친척 어른들은 설 돈을 준다. 돈이 귀하던 가난하던 시절 아이들에게 설 돈이 갖는 의미는 실로 대단했다. 아이들은 설 돈을 받아서 미래의 소비계획도 세우고 차곡차곡 챙겨, 은밀한 서랍이나 벽장 깊숙한 곳에 정성스레 보관해두기도 했다. 더러는 할머니에게 곶감을 사 먹기 위해 설 돈을 쓰는 재미있는 추억들도 있었다.

  지금 인생의 노년기를 살고 있는 실버세대들에게 설 명절에 대한 추억은 영원한 향수이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한 마디로 설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날은 없었다. 설 준비를 위해서 섣달이 시작하면 무려 한 달 내내 설날이 오기를 손꼽으며 설날을 기다렸다. 설전까지 못한 일들은 대부분 설 이후로 미루는 일이 많았고, 설은 부담되는 일들을 미루는 분수령이 되기도 했다. 설빔을 위하여 우선 집안 대청소를 하고, 빛바랜 벽지를 뜯어내며, 새벽지로 도배를 하거나, 헤어진 종이장판을 새것으로 갈며, 집안의 모든 것을 힘자라는데 까지 정리 정돈 하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었다. 설날에 쓸 음식들을 만들기 위하여 온 식구들이 설빔에 매달렸다. 설날의 주 음식은 떡국이기 때문에 미리 떡국 오리를 빼거니 비벼서 만들고, 섣달 그믐날에는 집안의 어른들이 손 두부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콩을 불려서 멧돌로 갈아 설날 아침부터 두부를 끓이느라 분주하기도 했다. 어른들은 새벽같이 세배 오는 아이들의 세배 받으랴, 설 준비하랴 바빴다. 아이들의 세배가 끝나고 대소가의 모든 제사가 마무리 되면 설날 오후 늦게 쯤에는 명절 민속놀이가 시작된다. 

  새 일년의 시작일인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동네의 민속 명절놀이의 대명사는 윷놀이였다. 어른들이 편을 나누어 장작조각 만큼이나 큰 윷가락을 던지며 멍석을 펴놓고 노는 마당 윷은 함성이 온 동네를 울리는 기쁨과 소통의 장이었다. 추운 날씨에 왕겨불 불더미를 만들어 손을 녹이며, 막걸리 한잔으로 넉넉한 인심을 나누는 설 놀이는 일년 내내 농삿일로 바빠 마음을 털어 놓고 즐기지 못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농촌의 향연이었다. 소통하지 못했던 농심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농촌의 설날은 바로 화합과 기쁨을 함께하는 날이며, 모든 복잡한 것을 잊어버리고 한데 어울려 즐기는 마을 공동체의 대 명절이었다. 설날을 시작으로 보름동안 벌어지는 놀이마당의 최고의 명품은 농네 윷놀이 판이었다. 그 외에도 여자들은 널뛰기, 화살던지기, 아이들은 재기차기, 구슬치기 등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기며 새해를 기원하고 명절을 기념했다. 설날에 시작하는 축제는 대개 정월 대보름까지 보름정도 계속되어 이를 우리는 명절 휴가 또는 농한기로 정하고, 아주 실컷 진득하게 노는 것으로 삶의 여유와 기쁨을 즐겼다. 이 기간에는 한 해 동안 소원했던 처가나 시집 또는 사돈가를 오가며 안부를 묻고 서로간의 근황을 살피기도 했다.

  요즘은 산업사회의 변화에 따라 설풍습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친지들의 만남조차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전에도 산업사회에서는 과거와 같은 설 문화를 즐기는 세시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옛날에는 전통적인 명절놀이로 시간을 보냈으나 요즘은 주로 현대적인 놀이문화가 대부분이다. TV 시청을 포함한 음악듣기, 바둑, 화투놀이 등이 있으나 요즘은 그것도 지루하게 생각하여 친가나 처가에 들려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족하기도 하다. 설에 모인 가족들은 일단 설 제사를 지내고 세배를 나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설 돈의 액수도 커졌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중고생 손주들에게 주는 설 돈의 액수가 5만원을 넘어선다. 매우 높아진 설 돈 액수에 놀랄지 모르지만,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시대라서 그만큼 아이들 값이 커졌다. 또한 모든 상품의 가격이 올라 기본지출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놀이기구들의 값이 어지간하면 10만원에 육박한다. 자세하게 그 물건들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가격이 오른 만큼 물건의 질 또한 좋아졌다. 시대의 문화비가 엄청나게 업 그레이드 된 셈이다. 요즘은 가정용 가전제품들도 질적으로 엄청나게 좋아졌다. 질을 고려하면 오히려 가격이 하락한 셈이다. 현대인의 생활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은 그 유용성에 비해 가격이 엄청나게 싼 물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필요한 생활용품을 소비하면서 행복을 향수하는 존재이다. 좋은 상품은 인간의 효용을 증가시키고 행복감을 높게 실현시킨다. 좋은 물건을 기분 좋게 사서 사용하는 기쁨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당연히 누리는 문화권이며 긴요한 행복권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설 돈처럼 아이들의 기분을 살려주고 신나게 해주는 방법도 없다. 학교에 다니던, 다니지 않던 요즘 아이들의 용처는 다양하다. 아이들의 지각능력이 옛날아이들에 비해 2~3세는 높아진 수준이다. 아이들이 놀이기구로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이 질적으로 개선되었고 가격이 높아졌다. 설 돈을 형편대로 주어 아이들의 기분을 살려주는 것은 명절을 슬기롭고 즐겁게 보내는 행복경제학의 실천이다. 온고지신의 시대정신을  잘 실천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예부터 성인도 시속을 따른다고 했다. 실버 세대들은 꼰대의 이미지를 벗는 것이 중요하다. 늙을수록 주머니는 풀고 입은 닫으라고 했다. 

  우리민족의 대명절 설은 반만년 백의문화가 만들어낸 최고의 의미를 가진 날이다. 절제하면서도 넉넉하게 마음을 나누고 귀한 물질의 사용과 나눔을 통해서 가족 간, 세대 간의 큰 사랑을 실천하고 베품을 통해서 풍요의 의미를 알게 하는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를 이어가는 귀한 조상들과 자손들이 함께 어우러져 삶의 기쁨과 보람을 새기는 설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 19가 창궐하지 않았던 설 명절에는 보통 3천만 명의 민족 대이동이 있는 설 명절은 무한가치의 의미를 지닌 나눔과 베품의 행복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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