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미나리밭에서 가꾼 행복

  • 기사입력 2022.04.06 11:38
  • 기자명 김미숙
김미숙
김미숙

  시골에는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노인들만 남았다.
  도시로 나갔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서 귀농 귀촌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하지만 귀농은 장밋빛 환상이 아니다. 손수 밭을 갈고 나무를 심어야 하는 노동이 들어간다. 귀농은 삶의 터전은 물론 생활 방식과 가치관까지 한꺼번에 바꿔야 하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하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땅을 선택 한 젊은 농부가 있다. 경산 육동에서 미나리 농사를 짓고 있는 황하철 씨가그 주인공이다.
  귀농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만 그는 그럴 만한 성격이 안 되었다. 뭔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부터 옮겼다.
  그가 처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곳은 저유소였다. 주유소보다 좀 더 큰 규모의 기름 저장고였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해서 직장에 다니다 보니 사회생활이 만만치 않았다. 대학교에 가서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진학을 했다.
  섬유학과에 들어간 그는 한 학기를 하고서 군에 들어갔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남자답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수부대에서 5년을 근무했다고 한다. 남자들은 군대 얘기만 나오면 졸다가도 눈이 반짝인다는데 그도 그랬다. 군대에서의 혹독한 훈련과 몸에 밴 생활은 평생 간다고 했다.
  그는 제대를 하고 바로 신협에 취직을 해서 대부와 채권 관리를 맡았다. 돈을 빌린 뒤 돌려주지 않고 달아나는 사람들을 잡느라 새벽녘까지 집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늦은 밤이나 새벽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은 7년 가까이 했다. 
  어느 날 사무실로 큰일이 났다고 연락이 왔다. 외출 중이었던 그는 부리나케 사무실로 달려갔다. 노인이 농약을 마셨다고 하면서 사무실 직원들은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전날 노인네를 만나 차마 돈을 갚으라는 얘기는 못 하고 술잔 기울이다 헤어졌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지다니 마음이 아려 왔다.
  돈 떼먹고 달아나는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사실 달아나는 게 아니었다. 시골에서는 아는 사이면 서로서로 맞보증을 섰다가 갚을 능력이 되지 않자 죄 없는 사람을 잡는 것같았다.
  월급을 받으면서 험한 꼴을 봐야 하는 자신이 한없이 서글폈다. 일도 일이지만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을 자신이 동조한 것 같아 만나는 사람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자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다음 날 그는 화사를 그만뒀다.
  그 후로 중고 자동차 판매하는 곳에서 몇 년 동안 근무를 했다. 그 일을 위해서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했다. 청년회 회장을 맡고 여러 단체에서 깃대를 앞세우며 일하느라 정신없이 몇 년이 흘렀다. 그 세월은 늦게까지 술을 마셔야 해서 가정을 돌보는 일이 어려웠다. 아내와 아이들이 자신이 필요할 때 언제나 일을 앞세웠다. 그러면서 바깥일에는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알고 숨을 헐떡였다.
  어느 날 지인과 술자리를 하게 되었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갈 즈음 사골에 빈집과 땅이 있다는 소리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었다. 가족과 함께 일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이 뭘까 생각했다. 여태껏 사람들과 복잡하게 얽혀 살았으니 이제는 자연을 가까이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던 것이다.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다음 날 바로 시골로 이사를 했다.
  그해 겨울은 시골에서 났다. 불혹의 나이가 될 때까지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고 상처받았던 마음을 시골에 와서야 추슬렀다. 그러다 보니 한 계절이 후딱 지나갔다. 봄이 되자 농번기가 시작되었다. 그는 미나리 농사를 시작했다.
  그가 정착한 곳은 경산에서도 오지 마을 육동이었다. 지난봄 처음 그들 부부를 만났을 때 미나리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의 농가에서 삼겹살을 구워 미나리와  함께 점심을 나누었다.
  그들을 알기 전에는 미나리 농사짓는 사람은 떼돈을 버는 줄로 알았다. 1kg 한 봉지에 만 원 가까이 하니 다른 농사와는 비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나리를 가꾸는 데 엄청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미나리는 물과 공기와 바람이 좋아야 하고 배수가 잘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맛과 향기와 영양가가 높은 야채로 길러진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미나리는 더러운 곳에서 자라 생것으로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미나리는 청정 지역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지하수를 퍼 올려서 길러진다. 그것을 알고는 난리법석이다.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미나리를 먹어야 봄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들 하우스 안에도 미나리가 가득했고 미나리 향을 맡기 위에 도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미나리 농사를 지으며 과일 농사를 보탰다. 말없이 남편을 돕는 그의 아내가 대견스럽다. 일이 고되고 힘들겠지만 그는 몇 년 전의 아내를  떠을리면서 너무나 미안해 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살림하는 것도 모자라 휴대폰 가게까지 운영할 때는 행복한 얼굴이 아니었다.
  요즘 그녀의 얼굴에 꽃이 피고 있다. 농촌 일은 여자들의 잔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그녀는 남편과 함게 밭에서 늘 일을 한다. 을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고사리 손으로 아빠를 돕는다. 아들과 아빠의 모습이 정겹다. 이제 그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느끼면서 산다. 그의 얼굴에도 아내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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