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예스따 섬의 보물

  • 기사입력 2022.06.07 05:48
  • 기자명 경산뉴스
김  미  숙
ㆍ[수필문학 신인상] 등단
ㆍ대구문인협회, 대구수필가협회,
영남수필 문학회 경산문협 회원
ㆍ대통령배 독서경진대회 대상 수상
ㆍ원종린 문학상 수상

  바닷가 아담한 마을 삐스코에 도착했다. 우리는 새떼를 보기 위해 여기서 배를 타고 바예스따 섬으로 가야 했다. 현지인 가이드가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자 손짓으로 따라오라 했다. 선착장에 이르자 보트에 올라타라는 눈짓을 했다. 빈자리 하나 없이 좌석을 가득 메우자 보트는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곧바로 섬으로 출발했다.

  한참을 달리자 저 멀리 우뚝 솟은 바예스따 섬이 보였다. 섬이 가까워지자 바다 위에 떠 있는 새떼들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빽빽하게 바위에 앉아서 조잘조잘 거리는 새떼들의 소리가 야단법석이었다.

  보트가 섬에 닿았다.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디선가 많이 맡아본 냄새였다. 새떼들의 배설물이었다. 그것은 굳어진 채로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켜켜이 쌓여 있었다. 마치 흰색 페인트를 칠한 조형 예술품이 바다 위에 놓여있는 듯했다.

  새떼들의 배설물은 질소와 인산이 함유된 구아노 비료로 쓰인다. 화학비료가 없던 시절에 구아노 비료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바예스따 섬에서 나온 구아노 비료의 원료는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이 되었고,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농토에 한 번만 뿌려도 작물이 잘 자랐기 때문에 획기적인 비료가 되었던 것이다.

  오래전 가을, 외환 위기로 남편이 실직했다. 우리 가족은 갑자기 생계가 암담해졌다. 아이들 학원은 고사하고 땟거리조차 걱정이었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애를 썼지만 마땅한 일거리가 없었다. 유일한 위안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배 밭이었다.

  봄날, 배 밭에 갔더니 배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눈부시게 핀 꽃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났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고 절망하고 있던 순간에 하얗게 송이송이 피어있는 배꽃을 보니 작은 일렁임이 생겼다. 부자로는 못 살더라도 돈 걱정은 안 하면서 살고 싶었다. 배 밭에 비료를 뿌리면서 부디 돈 걱정 안 하게 해 달라고 주문을 했다.

  바예스타 섬에서 나오는 구아노 비료는 한때 가난한 페루를 부자 나라로 만들어줬다. 수 십 년 전 우리나라에도 구아노 비료가 들어왔었다. 비료는 농사짓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복숭아와 포도농사를 짓는 나는 농작물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는 짐승들의 배설물인 유기질 거름이 최고였다. 이 섬에서 수입 되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구아노 비료를 몇 년 동안 배 밭에 뿌렸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좋다고 하니 돈을 들여서라도 맛있고 예쁜 배를 키워서 좋은 가격에 팔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해였던가! 작은 아이가 우리도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와 수학 학원에 보내달라고 아우성쳤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보내주지 못한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학원가서 공부하는 것보다 배 밭에서 놀면 더 재미있지 않냐’는 말을 하고 돌아서는데 콧등이 시큰거리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배 농사를 희망으로 삼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들은 그 밭에서 유아기를 지나 청소년을 거쳐서 성인으로 성장했다. 열매를 적과 하거나 전지를 할 때, 거름을 줄 때와 수확을 할 때도 늘 아이들이 함께 했다

  두 아이가 공군 장교 지원서를 쓸 때였다.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냐는 면접관의 질문이 있었다. 아이들은 주말마다 작은 배 밭으로 달려가서 일하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우린 그 당시 무척 힘들게 보내고 있을 때였다. 시간만 나면 아이들과 밭으로 가서 무거운 짐을 날라야 했고, 퇴비도 뿌려야 했다. 일을 하다 보니 온 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무심코 형의 얼굴을 보았더니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형도 자신의 땀범벅이 된 얼굴을 쳐다보더니 배꼽을 잡고 웃더라고 했다. 형제는 서로를 보면서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웃었다. 일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형과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는 답을 했고, 다행히 둘 다 장교가 되었다.

  군복무 후 형제는 이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다. 힘들게 보냈던 고난의 흔적도 조금씩 우리 곁을 떠나갔고, 가끔씩 하늘도 한 번씩 올려다보고 땅도 내려다볼 수 있는 시간을 만났다.

  먹고살기도 힘들었는데 살다 보니 지금은 지구 반대편의 나라, 페루의 보물섬에 올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농사지으며 새떼들의 똥을 금처럼 여겼던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런 기억 때문에 지금의 삶이 그리 고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바예스따 섬에서 바닷새들이 비행하는 모습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 모습은 휘황찬란하였으며 어떤 단어로도 형용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새떼는 우리에게 인사라도 하는 듯 섬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따라오면서 ‘끼욱끼욱’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정겨웠다.

  돌아오는 길, 내가 탄 보트는 수면을 스치듯 날아가는 새들과 함께 거친 파도를 넘고 또 넘었다. 섬은 점점 멀어져 갔다. 새떼들의 동굴들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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