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향한 첫 방 

  • 기사입력 2022.08.09 18:53
  • 기자명 김미숙
김미숙
김 미 숙

  큰아들이 대학입시에 떨어졌을 때였다. 일 년을 더 공부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집에서 공부하면 좋으련만 아들은 굳이 도시로 고집했다. 급기야 인터넷을 통하여 방을 얻어놨으니 짐만 옮겨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할 수 없이 옷 보따리와 이불을 챙겨서 아이가 얻어 놓은 방으로 달려갔다. 몇 시간이나 걸려서 원룸에 도착한 순간 깜짝 놀랐다. 시끄러운 차 소리와 번잡한 거리에 자리 잡은 것도 모자라 네 식구가 발을 다 들여놓지 못할 정도로 좁은 방이었다. 두 평 남짓 될까. 책상과 의자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일인용 침대는 책상 한 귀퉁이 밑으로 반쯤 들어가 있었다. 아들이 침대에 누웠더니 몸의 반이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한 면이 창문으로 된 방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찬바람이 몰아칠 것 같았다. 삼월이 시작되었건만 방 안은 온통 냉기로 가득했다. 8차선 도로를 끼고 있는 원룸은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 수 없었고 칼바람 추위에 따뜻하게 해줄 히터도 없었다. 

  끼니가 더 문제였다. 아이는 입맛이 까다로웠다. 뭐든지 잘 먹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음식 한 가지도 맛을 음미하였고 모양과 색깔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그런 아이가 학원 시간에 맞춰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찾아 먹고 설거지와 청소며 옷가지도 알아서 했다. 여태 부모 무릎 밑에 있다가 갑자기 옆에서 챙겨주는 사람도 없으니 혼자 장구치고 북도 쳐야한다니 여간 염려스러운 게 아니었다. 

  혼자 할 수 있겠냐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돌아오는 차에 올랐지만 돌아 나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내가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 어머니도 이런 마음 이였을까. 

  여고를 졸업한 나는 도시로 나와서 회사에 취직 했다. 처음에는 한 달 쯤 지났을 때 가까운 곳에 단칸방을 얻었다. 시골에 있는 어머니에게 알렸더니 곧장 기차를 타고 달려오셨다.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양손에 들고 오셨다. 두 평 남짓한 방은 다리도 못 뻗고 새우잠을 자야겠다고 하셨다. 내 방이 생겨서 신이 난 나와 달리 어머니는 이렇게 작은 방은 처음 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일 큰 보따리 하나를 풀었다. 어머니가 직접 수를 놓은 홑청에 솜을 넣어 만든 이불이었다. 딸이 취직이 됐다는 소리를 듣고 며칠 동안 정성을 들여서 만들었건만  방이 너무 작아서 이불은 다 펴지도 못하고 반은 접어야 했다. 

  그날 처음으로 어머니 품에 안겨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동생들에게 일찍 어머니 품을 내 준 나는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그날만큼은 어린 아이가 되어 어머니 팔을 베고 누워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니는 “살다보면 더 큰방을 갖는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다독이셨다. 그건 아마 어머니의 소원일 수도 있었고 맏딸인 나의 앞날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일 년 사글세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다시 그 방을 재계약했다. 전세로 옮기고 싶었지만 적금 탈 때까지 기다렸다. 회사에서 퇴근을 하고 좁은 내 방으로 들어가면 적막강산이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도시에서 갈 곳은 오로지 두 평 남짓한 내 방 뿐이었으니까. 

  가족과 다 함께 살 때는 늘 꿈꾸었던 나의 방이었다. 네 명의 동생들과 한 방에서 지지고 볶고 싸울 때면 온전한 자유를 누리길 얼마나 바랐던가. 새로운 세상 속에서 나만의 젊음을 불태우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막상 내 방을 갖고 나니 동생들이 그립고 부모님이 애타게 보고 싶었다. 

  어느 초겨울이었다.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썰렁한 방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얼른 번개탄에 불을 붙이고 연탄을 피웠다. 깔아놓은 이불을 덮고 잠시 누웠는데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나보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는 들렸다. 딸 시집보냈다며 떡을 가지고 와서 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일어나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줌마는 덜컥 겁이 났다. 바로 119를 불렀고 달려온 소방대원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내 입과 코에는 산소 호흡기가 꽂혀 있었다. 

  그 해 겨울을 보내고 새봄이 돌아오자 나는 나의 첫 방을 떠났다. 2년 부었던 적금을 탔고 좀 더 넓은 방을 구했다. 두 칸짜리 방이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옮겼다. 처음 방을 얻었을 때보다 짐이 두 배 정도 늘었다. 시골에서 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을 한 명씩 순서대로 데려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집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오니 옛날 나의 첫 방이 너무 궁금하였다. 찾아가 보았더니 도로와 건물이 새로 들어서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구에게나 첫 방은 잊지 못할 공간일 것이다. 세상에 처음 발을 디딜 때처럼 첫 방은 설렘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아들은 자신의 첫 방에서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교환 학생과 인턴으로 갈 때는 몇 달 동안 비워 두었던 방이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을 거쳐야 하겠지만 내가 그랬듯이 아이도 두 평 남짓한 그 방은 잊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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