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 송은경

  • 기사입력 2013.10.08 12:09
  • 최종수정 2013.10.08 12:12
  • 기자명 김도경 기자

민달팽이 / 송은경

- 송은경프로필 -
경북 성주 출생
경산신문 독서감상문대회 대상
산림문화 수필공모전 은상
동서커피문학상 수필 부문 맥심상
경산수필, 책쓰기포럼 회원

옷장을 열었다. 벗어놓은 허물처럼 힘없이 늘어진 옷들이 가득하다.
바래고 낡은 채로 어깨를 늘어뜨린 옷들을 끄집어냈다. 수 년 동안 내 몸에 걸쳐 보지도 못한 것부터 올여름까지 구석에 있던 것들을 모두 모았다. 두 눈 질끈 감고 차에 실었다.
지금 하지 않으면 나는 또 망설일 것이다.
더 이상은 묵은 짐들과 함께 내 삶을 질질 끌고 가고 싶지 않다. 이제 가벼워지고 싶다.
친구의 집들이를 다녀왔다. 개인 사업을 하는 친구의 남편은 늘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내가 남편의 월급으로 두 아이와 종종거리며 살고 있을 때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니는 부부였다.
최근에 부부가 같이 시작한 골프를 자랑이라도 하듯 거실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사는 그녀와 마주한 나는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고 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아마 그녀는 보았을 것이다.
감출 수 없는 부러움에 동요하는 나의 눈동자를 묵은내 나는 헛헛한 자존심이었다.
사람들은 제 노력에도 어찌할 수 없는 삶의 한계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비움이라는 말이 위로라는 이름으로 들어앉는다.
살아남기 위해 건져 올린 말이지만 때로 올무처럼 그 말에 매여 오히려 주저앉아 버리게도 된다.
좋은 핑곗거리처럼 난 오랫동안 이 말을 품고 살았다. 착각이었다.
내가 품은 건 비움이 아니라 비움을 가장한 겉멋이었고 체면이었다.
동갑내기 한 사람 앞에서 중심을 잃어버리는 내가 한심스러워 절로 발이 동동 굴러졌다.
여물지 못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싫었는데 나는 며칠 동안 애꿎은 남편에게 화만 냈다.
영문도 모른 채 남편은 혼자 아침밥을 먹고 출근했다. 아내의 이유 모를 반항에도 무쇠솥같이 꿈쩍 않던 남편 덕분인지 금방 끓었다 식는 양은냄비 같은 내 성질 탓인지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마음이 풀어졌다.
중년이 되어서까지 흔들리는 내가 싫었다.
시시때때로 애가 닳아 못 참는 마음과 머릿속을 이제 비우고 싶었다. 앉은 자리가 언제나 꽃자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화가 필요했다.
그 첫 시도가 옷이었다. 묵은 채로 자리만 차지하던 옷들을 단숨에 해치울 수 있었던 건 정말 비워지고 싶어서였다. 육신의 가까운 짐부터 버리고 나면 시야가 밝아지고 덩달아 마음자리까지 맑아질 것 같았다. 지극히 사소한 일처럼 보이나 나에겐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막대한 일이었다. 때로 삶은 엉뚱한 곳에서 실마리가 풀리기도 한다.
지난여름 지리산 계곡을 내려오다 민달팽이를 만났다. 민가가 가까운 아스팔트 한가운데 등껍질을 벗어던지고 빗길 위에 놓여 있던 민달팽이는 손가락 두 개를 합친 만큼 컸다.
장마와 겹친 폭우에 갈 길을 재촉하던 나는 걸음을 멈추고 느릿느릿 길을 건너가는 민달팽이를 바라보았다. 내 마음자리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가. 고작 일박 이 일의 산행을 준비하며 한 짐 가득 메고 온 등의 배낭이 부끄러웠다. 제 한 몸 가벼움에도 서두르지 않고 제 갈 길 가는 민달팽이 앞에서 나는 진정 비움의 가치를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속으로 들여 놓은 심신은 자연에 머무르며 깨달은 것들을 빨리도 잊어버렸다.
내가 매일 쉬기 위해 몸을 내려놓는 집에서 나를 지치도록 둘러싸고 있던 옷을 다섯 상자나 덜어내고 나니 민달팽이의 자유와 비움이 비로소 생각났던 것이다.
열심히 살면 몸과 마음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고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족할 만한 물질을 소유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만한 마음을 내려놓기는 또 얼마나 힘든지 그조차도 욕심이었음을 알겠다.
본의 아니게 꺾어져야 하는 마음을 억지로 붙들고 있는 것이 아직은 나의 버팀목이자 자존심이건만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흥분하는 나를 이제 제대로 바라보라고 달팽이는 맨몸 하나로 느리게 나를 마중한 것인가.. 굳이 앞다투어 자랑을 하지 않았지만 나보다 넉넉한 살림에 주눅이 들었던 것도 결국은 욕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 많은 옷을 버리지 못하고 입지도 않으면서 지니고 있었던 것도 결국 쓸데없는 미련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방법이 물질이라면 나는 분명 실패자다. 비움이라고 어쭙잖게 다독거리는 것 또한 실속이 없는 겉치레에 불과하다.
제 나름의 행복이 같을 수 없지만 나는 아직도 눈에 보이는 많은 것들로 인해 유독 힘들어하고 있다. 민달팽이의 느린 걸음과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으나 충분히 가득해 보였던 미물에 불과한 그 몸뚱이가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즈음에서다.
나는 아직 젊어서 이겨내지 못하는 나의 생이 무겁다.
살아온 만큼 넉넉히 철이 들지 않는 더딘 시간이 지겹다.
지리산 계곡에서 만난 민달팽이처럼 가벼워지려면 세속에서 닦아야 할 삶의 도가 너무 많이 남았음이다. 인생 곳곳에 숨어 있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또 다른 수양의 이름이다.
가늘어도 끊어지지 않는 거미줄처럼 세상에 흔들리면서도 그 위에서 자리를 지키는 거미처럼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나는 충분히 흔들려야 할 것이다.
온몸과 마음으로 바람과 비를 맞아가며 또 아파야 할 것이다.
물질 하나를 버림에서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다스리는 어느 순간까지 긴 호흡을 견뎌야 할 것이다.
나의 등짐이 민달팽이처럼 가벼워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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