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 기사입력 2020.07.28 22:38
  • 기자명 김미숙(배꽃)
김  미  숙
김 미 숙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 김미숙(배꽃)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더군다나 악기까지 다루면서 노래하는 사람을 보면 더없이 부럽다. 눈을 지그시 감고 감정까지 살려서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넋까지 잃고 만다. 어떤 자리에서든지 마이크만 갖다 대면 기다렸다는 듯, 서슴없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다루는 솜씨를 볼 때면 소외된 느낌마저 들 때가 있었다.
  나는 불혹의 중반이 넘을 때까지 남 앞에서 노래를 불러 본 적이 없었다. 끝가지 가사를 아는 노래가 없어서이기도 하거니와 음악적 감각이 없다보니 그 흔한 노래방 가는 것조차도 거부하게 되었다. 저녁 모임이 끝나면 무시로 드나들던 노래방 출입을 해 본 적도 없었고 혼자서 소리 내어 노래를 불러본 적도 없었다.
  친구들은 노래를 못하면 옆에서 박수를 치고 흥얼흥얼 거리면서 몸을 살살 흔들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소리가 쾅쾅 울리자 시끄럽다고 느끼는 순간 슬그머니 노래방을 빠져나올 때가 많았다. 연습을 해서 다음엔 후련하게 한 곡 정도는 불러 보고픈 마음뿐, 그때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음악과는 시나브로 담을 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단체여행을 갈 때면 주로 음주가무가 시작된다. 앞자리부터 노래를 시작하면 맨 뒷자리에 앉은 나는 그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럴 때면 노래를 부르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가끔은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중간에서 은근슬쩍 넘어갈 때면 안도의 한숨을 쉴 때도 있었다.
  십수 년 전 늦가을이었다. 그때 남편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매달 나오던 월급은 끊겼고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구상 중이었다. 일 년이 지나고 또 한 해가 가도 뚜렷한 일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새벽에 하던 몇 푼의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만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보이지 않는 어둠의 긴 터널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미래에 닥쳐올 두려움을 감내하기란 쉽지 않았다. 천장이 뚫어져라 한숨만 토하고 있었다. 
  봄은 왔다가 가고 갔다가 또다시 찾아왔다. 늘 오는 봄이지만 우리 집엔 아직도 겨울에 머물러 있었다. 이듬해 늦봄, 5월의 햇살은 눈부셨다. 투명한 하오의 햇살을 받은 이팝나무 꽃도 생기가 넘쳤다. 호젓한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나는 그때 일자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축 처져 있는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라디오에서 애절하게 들려오던 음악을 듣게 되었다.
 색소폰 연주였다. 노래는 어떤 곡인지 알지 못했다. 간혹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은 멜로디였다. 이팝나무 꽃 사이로 부서지던 햇살처럼 청아한 소리로 느껴졌다. 그 소리는 마음 한구석을 저릿하게 했으며 두근거리게도 했다. 음악소리가 가슴을 울려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음악에 빠져서 내려야 할 정류장을 몇 코스나 더 가서야 하차를 하게 되었다. 먼지 나는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되돌아오는 길은 내 삶이 자꾸만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우린 결혼할 때도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다. 문 칸 방에서 월세로 몇 년을 허덕이고 전세방에서 전전했지만 한 번도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지금은 두 아들이 있고 건강한 남편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무슨 걱정이냐며 내 안에 있는 내가 또 다른 바깥의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내려야 할 곳을 잊게 했던 음악소리는 그 후 삶이 벅차고 힘들 때 무시로 찾아왔다.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볼 때 심지어는 책을 읽으면서도 음악을 듣는 버릇이 생겼다. 문득, 노래를 배워서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었다. 축 처져 있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힘내라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백 번이고 노래 한 곡을 완전히 익힐 때까지 흥얼거렸다. 어느 해 문학회 연말 모임에서 처음으로 노래방에 따라갔다. 문학행사가 끝나고 모인 자리였다. 나도 이번에는 뺀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신감 있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가슴이 떨리고 쿵덕쿵덕 거렸지만 즐기려고 애썼다. 떨렸지만 노래를 부르고 나자 해냈다는 안도의 한숨이 몰려왔다. 
  나는 배우는 것에 뭐든지 남보다 뒤처졌다. 눈썰미도 없었고 배워서 익히는 것도 수없이 반복해야 겨우 따라갈 수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다. 남들이 일주일이면 배우는 것을 나는 한 달 이상 걸려야 가능했다. 두세 배 아니, 열 배 이상은 노력해야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시작하면 포기하기가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노래 한 곡을 불러본다. 시작하는 부분에서 박자를 놓치기도 하고 음정도 맞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른다. 인생은 고속도로처럼 쭉쭉 뻗은 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방도도 있고 국도도 있고 구불구불한 오솔길도 있었다. 노래 한 곡을 부른다는 것은 인생도 여러 갈래의 어렵고 힘들고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겨울은 찾아온다. 내게 찾아올 겨울의 빈 들녘을 풍요로운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다. 아직도 나는 노래 한 곡 멋들어지게 부르지 못하지만 수시로 음악을 듣고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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