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언니와 미꾸라지 

  • 기사입력 2022.01.26 11:17
  • 기자명 다은_이복순  
이복순
다은_이복순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큰오빠도 돌아가신 나는 언니가 부모 맞잡이다.
  고향 집에서 산 하나를 넘는 동네 시집간 언니한테 갈 때는 엄마 보러 가는 마음이다.
  언니는 시집가자마자 형부가 군에 입대하여 첫 시집살이부터 고생이 많았다.
  지난해 팔순을 지난 지금은 86세 형부와 4남매 자식들로부터 효도 받으며 잘 살고 있어 언니 집에 가도 마음이 편하다.

  그 시절에 살아온 어른들이 대부분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우리 언니 고생도 보통은 넘는다
남편도 부재중에 첫 딸을 낳은 언니는 어린 것을 사랑채에 시 증조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시어머니와 함께 감 장사를 하러 다녔다. 
  윗마을에서 산 감을 함지박에 이고 현곡에서 경주까지 걸어가서 감을 다 팔고 나면 저녁때에야 집에 돌아왔다.
  증조할머니가 떠먹이는 미음을 먹고 애타게 엄마 젖을 기다리던 어린 것은 엄마 젖이 한꺼번에 나와서 꺼벅 꺼벅 넘어가기도 했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시조부모 시부모도 돌아가시고 시동생과 시누이 둘을 결혼시켜 분가하기까지 대가족의 맏며느리 역할에 너무나 고달픈 삶이었다.

  엄마 젖을 많이도 굶고 자란 큰딸은 하남시청 녹색환경 국장으로 사위는 성남시 교육청 교육장, 외손녀는 여군 장교가 되어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4남매 중 유달리 속을 썩였던 하나뿐인 아들은 외손자를 보더니 철이 들어 매일 안부 전화를 하며 효자 중의 효자로 변했고 막내딸과 둘째 사위는 목사가 되고 손자 8명 증손자 하나를 두고 있다.

  경부선을 타고 경주I.C로 나가기 전에 내 고향 골안마을 능선에 부모님의 산소가 보인다.
  고향 하늘 하얀 뭉게구름 속에 목화 따는 한 소녀가 나타났다.
  그 목화솜으로 만든 솜이불을 싣고 시집가는 언니를 따라 나도 간다면서 동네 끝까지 따라가며 울었던 일곱 살 소녀! 
  세월의 흔적 앞에 흰머리 휘날리며 70고개 내다보이는 황혼길에서 팔순을 맞이한 그 언니를 만나러 간다

  고향이 바닷가도 아닌 그 소녀가 언니 집에 가는 길인데 섬 집 아기를 부르며 눈물을 짓고 있다.아기를 재워두고 굴 따러 간 엄마는 갈매기 울음소리에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모랫길로 달려오는 엄마의 애잔한 그 심정이 밀려왔다.
  전업주부가 되어 자유의 몸으로 고향을 찾아오니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고생한 언니 생각, 엄마 젖을 굶고 자란 조카 생각이 헤집고 올라와 감정이 밀착되었다.

  도착 시각을 확인하던 언니는 허리에 벨트를 멘 채 꾸부정한 모습으로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마구간에 소가 인기척을 듣고 움-머(음매) 하며 반겨주는 소리가 시골 냄새를 풍기며 정감이 난다.
  마루에 올라서기가 바쁘게 언니가 잡은 미꾸라지 소쿠리를 열어보였다
  와-미꾸라지다. 퍼드덕거리면서 밖으로 나오려고 사투를 벌이는 힘찬 미꾸라지 처음 보는 듯 신기하다.
  저녁에는 언니가 끓여주는 추어탕을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웠다.

  화장실이 밖에 있는 시골 언니 집에서 자고 일어나 미꾸라지를 어떻게 잡는지 신기해서 언니를 부추겨 미꾸라지 잡으러 나섰다.
  벼 이삭이 영글어 가는 나락 논에 들어가서 고랑 사이에 바닥을 파고 통발을 놓기까지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통발을 건지러 갈 때 위치를 알기 위해 통발에 끈을 달아 논둑 풀에 메어 놓는다.
  체험하지 않았을 땐 예사로 생각했는데 허리 다리의 고통을 감수하고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 끓인 언니를 생각하니 생각 없이 먹은 것이 미안하다.

  아침에 통발을 건져보는 체험을 하지 못한 채 일찍 떠나야 해서 몹시 아쉬웠다.
  내년에는 여유 있게 와서 언니와 함께 미꾸라지 잡기를 약속하며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죽담 한쪽에 세워 둔 도정기를 가동하여 즉석에서 찧은 쌀과 온갖 먹거리를 챙겨 주는 언니의 사랑에 막내를 두고 일찍 돌아가신 엄마가 더욱 그리워 언니 몰래 눈물을 훔쳤다.
  허리띠를 매고도 늘 아프다고 하는 꾸부정한 언니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은 만나러 갈 때의 기쁨과는 달랐다.
  도착하면 전화해라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며 바라보는 엄마 같은 울언니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염원하며 언니와 고향길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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