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길 위에서 쉼표 찍기. 찬란한 해넘이를 위하여

  • 기사입력 2022.05.17 23:14
  • 기자명 김미숙
김미숙
김  미  숙

  우리 부부는 삼십 년 전에 결혼했다. 같은 해에 결혼식을 올렸던 친구는 곧바로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얼마 전에 그들과 연락이 닿아 남미의 페루 여행을 같이 하기로 했다. 그곳으로 떠나기 전날, 급한 일이 생겨서 올 수 없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이 아닌가! 머나먼 타지에서 길잡이가 될 그들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인해 당황스러움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인천에서 비행기에 올랐고 멕시코를 거쳐 이틀 만에 페루에 닿았다.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던 택시는 우리를 태우고 어디론가 달렸다. 기사는 지도를 보여주며 와카치나 사막으로 간다고 했다. 고속도로 양옆으로는 사막이 끝없이 펼쳐졌다. 사막은 페루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달궈진 모래 언덕은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팍팍했다. 
여행은 고생과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페루에 도착하자마자 허기가 느껴졌다. 빵 한조각 살 만한 마트도, 밥한 끼 먹을 만한 식당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말도 통하지 않았고 지도를 보며 여행지를 찾다 보니 배낭여행의 어려움이 폐부 깊숙이 와 닿았다.  
결혼 초, 우리의 삶도 팍팍했다. 얇은 월급봉투로 집 한 칸 장만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아껴야했다. 재래시장에 장 보러 갔다가 빵 한 조각 덥석 바구니에 담지 못했고 마음 놓고 외식 한 번 하기도 힘들었다. 
결혼식을 준비할 때였다. 나는 혼수품이니 예물 같은 것들은 다 생략해도 좋은데 신혼여행만큼은 제주도로 가자고 졸랐다. 돈이 없었던 그이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나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이는 나 몰래 돈을 빌려서 제주도의 여행을 성사시켰다. 그 경비는 몇 달 동안 월급을 쪼개가면서 갚아야했다. 그런 사실을 몰랐던 나는 돌아오는 공항에서 결혼 30주년엔 남미 여행을 하고 싶다며 지나가는 말로 던졌었는데 그 소원이 이렇게 이루어질 줄이야. 오게 될 줄이야.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다 이룬 느낌이었다. 
오후의 햇살이 내 등줄기에서 서성거릴 때쯤 와카치나 사막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아래 가장 높게 보이는 모래언덕의 능선이 보였다. 언덕에 오르자 신비로운 모래 바다가 드넓게 펼쳐졌다. 바람이 불어와 몸의 열기를 훔쳐갔다. 사막 한가운데는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도 있었다. 호수 위로 잎이 풍성한 야자수들과 작은 배가 유유자적 떠다녔다. 
사람들이 바다 사막을 즐기고 있었다. 어릴 때처럼 비닐 포대기를 배에 깔고 모래사막을 타고 미끄러져 갔다. 남편도 포대기에 몸을 맡긴 채 저 아래 블랙홀로 까마득하게 멀어져 갔다. 블랙홀에 도착한 그가 한 알의 점 하나로 보였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손짓하는 그의 모습은 모래 알갱이가 데굴데굴 구르는 것 같았다. 
그는 환갑이 되었다. 숲을 이루었던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다 빠져나갔고 흘러내린 은빛 곱슬머리 몇 가닥이 봄 응달의 잔설처럼 남아 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지 젊은 사람도 두렵다는 모래언덕을 아무렇지도 않게 타고 내려가다니 아직도 청춘이구나 싶었다. 뭐든지 거리낌 없이 도전하고 일궈내는 그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제껏 좋아하는 취미 하나 없이 일만 하고 살았던 그이다. 친환경농자재 영업과 판매를 하느라 장돌뱅이처럼 세상을 떠돌다가 들어오곤 했다. 전국을 헤매다가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그는 여행을 좋아했지만 돈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삼십 년 동안 몰래 조금씩 적금을 부었다. 너무나 뜻밖이었다. 어렵던 시절에도 해약하지 않았던 적금이었다. 
창문 없이 뻥 뚫린 버기카에 올라탔다. 버기카는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높은 언덕에 단숨에 올랐다. 쭈-욱 언덕에 오르다가 경사진 낭떠러지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았다. 마치 롤러코스를 타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떨어질까 봐 조바심이 났다. 
결혼 삼십 주년을 돌이켜보니 내 삶도 그랬던 것 같다. 삶이 버거워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났고 잔잔한 파도가 이어지던 때도 있었다. 어떤 해는 한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져서 막장에 닿는가 싶다가도 수면 위로 천천히 해가 뜨는 날도 있었다. 삶은 수시로 낭떠러지로 떨어뜨렸다가 하늘로 치솟았다. 
어느 해 삶이 힘겨워 무작정 서해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이었다. 할미 바위와 할배 바위가 물속에 잠기고 있었으며 하늘과 바다는 온통 붉은빛과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해가 솟아오르는 광활한 모습은 자주 보았지만 해가 넘어갈 때의 찬란한 분위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해넘이도 해돋이 못지않게 펼쳐질 수 있음에 감동했고 다시 힘을 얻어서 살아보자고 새롭게 출발했던 날로 기억된다.
버기카는 우리를 태우고 다시 어딘가로 달렸다. 해넘이가 잘 보이는 곳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붉게 물든 사막에 앉아 언덕으로 해가 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해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 계곡을 넘고 또 넘었다. 사구의 능선들을 온통 주황빛 붉게 물들이며 서녘으로 해는 천천히 넘어갔다. 꽃지 해수욕장에서 봤던 하늘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재설계한다. 삶이란 길을 여행하다 보면 뜻밖의 상황을 맞이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우리를 안내할 길잡이가 없어도 우리의 인생은 넘실넘실 잘도 세상을 물들이며 기울어간다. 그때마다 순간순간을 만끽하며 살아갈 것이다. 찬란한 인생의 해넘이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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