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효는 만행에 근본이라 하였다”

-경산시 남산면지역에 전승되는 효(孝)문화의 전승양상-

  • 기사입력 2017.09.26 16:12
  • 최종수정 2017.09.26 16:16
  • 기자명 문화부국장 김종국


  본지는 2017년 기획 특집으로 경산지방에 전승되는 효문화를 현장과 설화적 모티프를 중심으로 현존하는 정려각에 세워진 기문을 통해 이를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전승되는 경산지방의 효사상은 곧 나라와 부모를 섬긴다는 근본이념에서 생성된 것으로, 대부분 자신의 몸을 위해(危害)하는 희생효가 경산지방의 효문화의 근간이 되고 있다.
  본고는 지난 호에 이어 마지막 호로 경산시 남산면지역에 전승되는 희생효열편을 정여각과 비석에 명문화된 기문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①안인석(安仁碩) 선생의 효행
  안인석 선생의 효행기는 경산시 남산면 조곡리 새터에 196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영모재에서 그 행적을 찾아볼 수 있다.
  효자 안인석 선생을 추모하는 영모재는 주변에 인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재당은 아래 사진에서와 같이 3칸 한옥에 기와를 올리고 마루를 설치하였다.

▲ 효자 안인석 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추모하는 영모재
  (효행기문)
  옛날 자인고을의 관동 양지쪽에 나의 선조인 현령 부군의 여막과 유학을 가르치던 강단이 있던 장소다. 아울러 아버지의 옷과 신발이 소장된 곳이다. 조상들의 남기신 자취가 비록 평상시의 쉬어 놀던 자리라도 감히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그분들의 정신세계와 혼백이 담긴 곳이랴. 집이 세워진지는 오래 되었다. 아. 기묘년 봄에 문주의 어른께서 영모당의 집에 좀 벌레가 끓고 용마루에 비가 샘을 걱정하여 마침내 옛집을 손을 다시 보았다.
  무릇 당실이나 주방의 설비가 족하여 삼가 재를 올릴 만하였다. 오래도록 조산을 사모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 기문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부형의 말씀을 따라서 불초 이 사람이 추가 기문을 쓰게 되었다.
  오호라. 부군이 문정공의 종손으로서 가문의 학업인 충과 효를 이어 받은 즉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명나라 헌종 무렵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경산 현령의 보좌역으로 일하던지 오래지 않아 창녕공의 상을 당하였다. 움집 같은 여막에서 상을 마쳤다. 다시 관에 나가지 않았고 집안을 돌보며 살았다. 이때부터 후손으로서 가문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누구라서 나의 아버지의 덕성을 작다고 하겠는가. 다만 큰 불의 여파 속에서 평소 하시던 말과 행실이 후세 사람들의 본이 되었다. 때때로 다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어찌 하리오. 나무와 학희씨가 부군 묘의 기문을 쓴 것이 영모당에 있으니 가히 오래도록 공공연히 남을 것이다. 모자란 사람이 다시 무엇을 덧붙이리오. 시에 그 덕을 닦아야한다고 안 했는가. 또 이르되 그대를 낳아 준분들에게 욕이 되지 않게 하라.
  무릇 나 같은 아버지의 후손을 위하여 마땅히 각자는 하나같이 아버지의 행실을 힘써 행하고 아버지의 학업을 배운즉 그것은 영원히 사모하고 욕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장부의 일이 아니겠는가. 
                                    병자 구월 구일 후손 응곤 근기 윤욱 근서

  ②배성길(裵成吉) 선생의 효행
  효자 배성길 선생의 효행기는 경산시 남산면 상대리 526번지에 1998년 5월 23일 축조된 추모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재당은 전통 사우(祠宇) 양식으로 다섯간을 세워 양쪽의 옆은 실을 삼고, 가운데 두 칸은 아울러 앞 처마 쪽으로 당을 삼고 있다. 당은 여재라 하고 마루는 유라 하였다. 문은 경행이라 하였다. 이를 통틀어 추모재(追慕齋)라 칭하였다.

▲ 배성길 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추모하는 재당
  (효행기문)
  자인현 남쪽의 상대리에 자리한 삼성산의 숲이 우거진 언덕에 미루어보건대, 넉자 됨직한 가래나무와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 서있다. 옛날 효자 배성길은 헝겊이나 상자에 넣어 보존한 자료에 의한즉, 뒤로 내려오면서 새로 재실 다섯간을 세워 양쪽의 옆은 실을 삼고 가운데 두 칸은 아울러 앞 처마 쪽으로 당을 삼았다. 당은 여재라 하고 마루는 유라 하였다. 문은 경행이라 하였다. 이를 통틀어 추모재라 하였다. 또한 음식 방은 그 옆에다 두어 이로 하여금 제전을 지키도록 하였다. 효손이 이웃해 살면서 어른을 사모하여 성심을 다하여 향사를 올렸다.
 
  여기서 종친들을 모여들게 하여 이바지를 하고 여기서 함께 자기도 하였으니 실로 멀리 조상을 사모하는 일을 행함이니 세상에 드문 일이다.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재실의 낙성을 고함에 나에게 기문을 청하여 오래도록 그 의의를 남기고자 하였다. 나의 글이 모자랐으나 끝내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남긴 사적을 살펴보게 되었다. 배공은 성산에 대대로 살았는데 처음 이곳에 터전을 잡았다. 어려서도 지순한 천성을 지녔다. 어린 나이에 어른을 잃고 큰 소리로 울지 않았고 피눈물을 줄줄 흘렸다. 그 때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으므로 이 소식을 듣고 더욱 병이 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하였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아 병이 들었다. 공은 약을 구하여 병수발을 하매 잠시라도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스무 해 정도를 하루같이 하였다. 마침내 상을 당하여 너무 슬퍼하여 거의 몸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편모를 지성으로 받들어 기쁘시게 하였다. 한탄스러운 것은 몸을 편하시게 하여 뜻을 받듦에 지극정성으로 아니함이 없었다. 부리는 종들에게도 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않았다. 좁은 길을 넓히고 도랑을 치는 등 모든 일에 다 몸소 친히 함에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혜택을 입은 이들은 모두 칭송하여 말하였다. 효자가 보여준 정성의 힘은 이미 길이며 논밭에도 미쳤다. 마을 사람들이 천거의 문서를 갖추어 관찰사인 얼사와 암행어사인 수사에게 알리고 다 함께 포상을 하도록 글을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음이 후세인들의 안타까움이 되었다.
  어허. 효를 이름에 있어 어찌 반드시 기이하고 특이한 사적만을 후세에 남겨 칭송을 할 것인가. 효행에 있어 평범한 일에도 그 정성을 다하고 해야 할 구실을 다 함으로써 뜻과 몸을 다하여 봉양을 하는 것이다. 옛날 증삼과 민자건의 효행 역시 이러했을 것이다. 배공은 이미 이러한 지극한 효행을 하여 왕의 자리라도 법도에 맞아야 한다고 보았다. 이제 10세 이후의 후손으로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일에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한다. 이에 어찌 남겨주신 은택을 숭상하지 않는다면 부끄럽지 않겠는가. 오직 현명한 후손들은 재실을 세움을 능사로 삼아 끝내지 말고 이러한 조상을 섬기는 돈독한 마음과 행실을 널리 펴서 조상의 음덕을 생각하고 욕됨이 없도록 하며 삼강의 도덕을 싫어하는 세상에 맞서 예악과 양심을 잃지 않도록 하면 성산 가문이 오래도록 미풍을 이어가며 그렇게 함으로써 오래오래 가풍을 지켜 갈 것이다. 글에 하였으되, 효자의 성심이 오래도록 다함없음이여. 그대들에게 현명한 후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더욱 힘써야 함을 일러두노라. 이로써 기문을 삼는다. 
                                            경술 백로절 흥해 배동환 찬

  이밖에도 남산면지역에는 이름으로만 전하는 효행자의 행실이 다음과 같이 전승되고 있어 남산면이 효의 고장임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효 자

호 및 관향

주요행실

표창 기

배광록

여칙, 김해인

부친이 병환 중에 온갖 약을 구해 받쳤고, 사후에는 시묘살이를 하였다.

수사에 포상

받고 부역 면제

배성고

성주인

부모를 극진히 봉양

관에서 표상

조 씨

창녕인

18세에 시집와서 남편이 방탕하여 홀로 시부모를 모시면서 독신 생활

표상 없음

신필행

유정, 거칭인

14세에 모친 위독, 단지 주혈로 목숨을 연명

사림의 숭배

최 씨

흥해인

17세에 시집와 시부모와 남편에 순종하며 지극 정성으로 봉양

이웃에 칭송

안예희

창두, 충주인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매일 양친의 무덤이 있는 용산에 성묘

이웃에 찬사

  지금까지 필자는 경산시 11개 읍면과 경산시 동지역에 전승되는 희생효열편을 현장에 남아있는 기문을 중심으로 감히 소개하고자 하였으나, 필자의 부족한 학문에 한계가 없지 않았음을 솔직히 시인하며, 부족한 부분에 대하여 후학들의 지속적인 연구를 기대하는 한편, 그동안 본고에 관심을 주신 독자 제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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