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욕심은 화가된다는 장자계전설

  • 기사입력 2018.05.01 20:32
  • 기자명 김종국 기자
▲ 탁발승의 도력으로 거북바위 목을 쳤다는 전승현장(사진 최용석 73)
▲ 탁발승의 도력으로 거북바위 목을 쳤다는 전승현장(사진 최용석 73)

   지나친 욕심은 화가된다는 장자계전설

  [세나 벌과 김부자]

  세나벌은 경산시 용성면 육동지역에 구룡산괴가 흘러내리는 반룡산 수계가 연접한 청도 금천면 소천리로 굽이도는 대종2리 마을 앞 들판이다. 조선 중기까지 이 일대에는 세나벌이라는 자그마한 촌락이 있었는데, 이는 마을 앞 용천(龍川)이 흐르는 계곡 절벽에 거북 형국의 큰 바위를 두고 지칭되었던 지명이라 전한다.
  용성면 육동지역에서 전승되는 세나벌 전설은 인간의 탐욕이 스스로 자신을 몰락시켰다는 훈도적 장자계 전설로서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장자계 전설에 본이 되고 있다.
 
  [화자의 구연]
  ①옛날에 세나벌에 김부자가 살았다. ②그는 욕심이 많아 베풀 줄을 몰랐다. ③하루는 한 탁발승에게 쌀 대신 마구에 구정물을 바랑에 부었다. ④며느리가 나와 사과하며 쌀을 시주하였고, 다른 식솔들이 김부자가 망하게 집 앞 절벽을 거북바위 목을 위해하라 했다. ⑤과연 그렇게 하니 부자는 돌림병에 죽고, 가솔들은 뿔뿔이 해어졌다.(제보, 차정환, 80)

  [화소별 분류]
     (발단부)
  ① 옛날 육동에 욕심 많은 김 부자가 살았다.
      a            b              c 

     (전개부)
  ② 그는 모으기만 할 뿐 베풀 줄 몰라 식솔들도 못마땅해 하였다.
      d                      e           f         g
  ③ 하루는 스님이 탁발을 왔는데, 김 부자는 구정물을 주었다.
       h      I        j                         k   
  ④ 식솔들이 세나벌바위를 깨어 부자를 망하게 해달라고 스님께 애원하였다.
        l             m                      n                    o
  ⑤ 스님이 바위를 깨트리자 김 부잣집에 돌림병이 나돌아 식솔들이 모두 떠났다.
        p       q                           r                        s
     
     (결과부)
  ⑥ 그 후, 김 부자가 돌림병으로 죽자 그가 묻힐 땅 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t      u          v              w             x

  위의 24개 화소를 설화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배경화소~ 시간화소 <언제> 옛날, 하루는,
                  공간화소 <어디서> 세나벌 바위 앞 김 부자집
     ⓑ 주화소~   인물화소 <누가> 김부자, 식솔, 탁발 승
                  사건화소 <무엇을> 세나벌 바위 학대
     ⓒ 종속화소~ 종속화소 <어떻게, 왜> 탁발에 구정물 시주 
     ⓓ 증시화소~ 증시화소 <지금도 있다는 증거> 세나벌           

  위에서 시간화소를 주목하면, 전설이 시작될 때 “a의 옛날에”가 선두에 있으며, 본격적으로 전개될 때 “h의 하루”가 선두에 있고, 장면이 전환될 때 “l와 k의 탁발에 구정물 시주”로 시작하며, 이야기가 끝나고 화자가 현실로 돌아와서 증거물을 제시하는 증시가 시작될 때 “t의 그 후”로 고정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어느 전설에서나 해당되는 보편적이며 고정적인 시간화소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t의 그 후”는 시간화소의 필수적인 화소는 아니다.

  세나벌바위와 김부자 전설은 전국적으로 전승되는 ‘장자못 전설계’의 하나로, 스님을 학대하자 결국 부자가 망했고, 그 중 선행을 한 며느리에게 금기사항을 일러 살려 주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하여 돌로 변했다로 결말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용성면 육동지역의 세나벌바위와 김부자 전설에는 선행을 베푼 자가 식모로 등장하고 있으나 여기서 다른 동작화소가 삽화 되지 않아 욕심 많은 김 부자와 그 가족들이 모두 벌을 받는 것으로 끝이 난다.

  여기서 가해자의 화소는 부정적인 나쁜 속성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피해자와 짝을 지었을 때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먼저 가해자의 속성은 부자, 잔인, 척불, 인색, 욕심 등으로 나타나고, 피해자의 속성은 탁발 나온 방문자, 불교성이 있는 자, 징계할 수 있는 신비력을 가진 자면 반드시 복수하는 자이다. 장자못 전설계에서 비중이 큰 “징계 능력이 있는 불교의 힘”이 다른 전설에서는 약화되어 있다. 곧 불력으로 징계한다는 사상이 풍수지리사상으로 대체되며, 나아가 “재미있게 부자를 골탕 먹이기”라는 인간중심 사상에 이르기도 한다. 불력과 풍수에 대한 힘의 변이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엄격한 불력→ 골탕 먹은 중이 풍수의 힘을 발휘하거나, 사전에 충분히 풍수를 공부한 뒤에 나타나는 복수의 형태와 결합한다.
  이처럼 불력의 힘이 약화되는 변이가 나타나는 경우 불교가 포교용으로 풍수지리설을 이용하려다가 도리어 이용당한 것이 되며, 더욱이 조선시대에 와서 억불숭유정책으로 힘이 약해진데다가 유교의 조상숭배 사상으로 풍수명당의 비중이 커지게 된 데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이능화, 1978, 제 7집). 

  세나벌바위와 김부자 전설 또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부자는 나쁜 짓을 하고 인색하여도 더욱 부자가 되고, 사찰은 스님이 열심히 탁발을 하여도 날이 갈수록 절 살림이 피폐해 지는데 대하여 중이 부자와의 힘내기에서 부자는 잔인하고 중은 골탕을 먹는데서 부자 집 앞의 바위를 깨어버리는 자제하여야 할 불력을 발휘함으로서 “애당초 바위를 자르지 않겠다”라는 금기가 존재하여 있었음에도 중이 이를 파기함으로 중을 학대하여 부자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변이의 요인은 화자의 개인적 요인과 전설의 배경이 되는 장자못 사상이 전환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현장적 측면에서도 세나벌바위와 김부자 전설은 다분히 불교적 성향을 띠고 있다. 전설의 현장은 용성면 육동마을 내의 대종리이다. 대종리는 육동분지 내에서는 가장 큰 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안에는 한 장군 사당과 기독교회가 있다. 앞마을의 지명은 용천리이고 그 윗마을이 용전리이다. 용전리는 신라대에 원효대사에 의하여 초창되었던 것으로 전승되는 ‘반룡사’가 있다. 본 전설은 반룡사 승려와 대종리 김부자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로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는‘장자계’전설의 유형을 따르고 있다.

  [각 편의 원형화소 분석]
  (가) 스님이 탁발하려 부자집에 들리니 부자가 나타나 바랑에 쇠똥을 부었다.
  (나) 며느리가 나타나 사과하고 쌀을 시주하였다.
  (다) 스님이 며느리를 살리기 위해 이른 아침에 ‘뒤돌아보지 말고’ 마을을 떠나도록 시켰다.
  (라) 며느리는 새벽에 집을 떠나다 시끄러운 소리에 뒤돌아 보다 돌로 변했다.

  [화소의 변이양상]
  (가) 탁발하는 스님에게 부자가 나타나 바랑에 쇠서랑 물을 부었다.
  (나) 식모가 나타나 스님을 떠나도록 위로하였다.
  (다) 스님은 김부자 시종의 종용에 의해 세나벌 바위를 깨어버렸다.
  (라) 김부자집은 돌림병으로 모두 죽고 말았다.

  위 2와 3에서 다음과 같은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먼저 부자의 행위에 대하여 이를 사과하는 상대로 전자는 ‘며느리가’, 후자는 ‘식모’가 등장한다. 며느리는 스님에게 쌀을 시주하고 시아버지의 잘못을 사과하고, 식모는 단순히 스님에게 위로하는 말로 끝이 난다.
또 각 편의 (다)에서 전자는 스님이 시주하는 며느리를 살리려 하였고 그 며느리에게 금기사항을 부여하였고, 후자는 스님이 시종들의 종용으로 세나벌 바위를 깨트려 버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위의 각 편에서 (가)는 스님과 김부자 간의 싸움으로, (나)는 화해를 시도한 것으로 분석되나 (다)이하에서는 각각 다른 결과를 나타내게 하는데 특이함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2-1)의 (라)에서 며느리 또한 스님이 정한 금기사항을 지키지 못함으로 가족 공동체의 벌을 함께 겪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나 (2-2)의 경우는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체 공동체적 책임을 감당하여야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를 전설현장 중심으로 분석하면 이 지역은 종교적으로 불교보다 타 종교세가 큰 지역이다. 불과 300호 남짓한 마을에 교회가 2개소 한 장군사당이 2개소인 반면 사찰은 1개소로, 이는 기존의 불교를 배척하는 세력과 이를 옹호하려는 세력 간에 발생한 갈등 현상의 변이로 분석할 수 있다. 

  설화 속에 탁발승이 김부자집 맞은편에 거북바위의 목을 치자 그해 추운 겨울 욕심 많은 김부자는 이승을 하직하였고, 그가 죽자 호화스럽던 대궐 같았던 집은 느닷없이 큰 불로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하고, 이후 마을에 돌림병이 돌아 함께 살든 권속들도 저마다 하나 둘 뿔뿔이 흩어지니 김부자는 불구덩이 스스로의 업을 안고 생을 마감하였다 한다. 이와 같은 장자계 전설은 전국적 광포 전설로 보편적으로 풍수설화와 결합하여 나타나는 사례가 흔하나 전승되는 종속 화소는 다분히 훈도적이며 권선징악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