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장(老壯), 귀촌으로 화려한 인생2막의 꿈 길러

경산시 자인면 원당리 최용석(73세)씨

  • 기사입력 2018.07.04 14:19
  • 기자명 김종국 기자
35년간 "대도철물" 운영의 노하우를 회고하는 최용석씨
35년간 "대도철물" 운영의 노하우를 회고하는 최용석씨

  30대 후반에 뛰어든 철물전, 그는 지난 2011년까지 대구광역시 칠성시장 내 “대도철물”사장이었다.
  그는 1946년 6월 1일, 지금의 경북 자인면 원당리에서 당시 공무원 가족 6남매(4남 2여)의 맏이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 고향인 자인에서 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당시 대구시 소재 협성상업고등학교(현 협성고등학교)를 졸업, 연이어 3년간 군복무를 마친 후 최초로 근무한 직장이 대구시 중구에 소재 한 한 금융기관의 은행원이었다. 그 후 의류업계 사장을 거쳐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직업이 도소매업인 철물판매업이다.
  평소 누구보다 장사에 소질이 있다 자부하였던 그에게는 단순한 손익원리가 작용한 것이다. 이를테면 1,000원짜리 물건에 100원만 더 붙이면 100원이 라는 순이익이 남는 다는 극히 단순한 원리가 그의 철물판매업계 35년 인생에 밑천이 되었다 했다.
 “성실히만 하면 원가보다 당연히 얼마간의 이윤이 붙게 마련이고, 작은 이윤이라도 소중히 생각하며 고객관리에 집중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게 장사가 아니겠습니까?”하며, 그는 대구 칠성시장 내에 “대도철물”이란 철물도소매업 간판을 내걸고 오로지 성실과 신용 하나로 앞만 보고 뛰어 왔다.
 “도소매업이란 것은 조금 적게 남기고 많이 팔수만 있다면 그게 남는 장사이죠. 하지만 남보다 많이 남기고자 하면 고객은 소리 없이 멀어지는 게 이 바닥 생태지요.”
  그의 35년 철물 인생은 이 같은 원칙과 우직한 고집 하나로 지켜왔고, 그 덕에 두 자녀를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그동안 먹고 살 수 있었다며, 철물판매업계에 인생1막을 걸었던 자신의 용기와 소회를 피력하였다.
 “모든 일은 자신감이죠. 내가 이일에 만족하고 있다면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고, 내가 이 일에 만족할 수 없다면 그 자체가 불행이 아니겠습니까?”하며, 그가 반평생 넘게 철물판매업계에서 배운 인생철학은 모두가 긍정적 사고와 성실함에 있었다 하였다.
 “자신이 구멍가게를 열었다 하여 소외되거나 이를 불평하고 자칫 성실하지 못한다면 고객들은 작은 불친절 하나에도 사정없이 외면하고 만다는 단순한 원리, 이것이 곧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의 노하우지요.”


자신의 집에 농기계 수리공간을 마련한 최용석씨
자신의 집에 농기계 수리공간을 마련한 최용석씨

  그는 지난 2011년, 칠순을 앞두고 그간 정열을 쏟았던 철물판매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고향 자인면 원당리로 귀촌하여 현재 3천여㎡에 달하는 농지에 과수와 채소 재배로 인생2막을 다시 설계하고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듯이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지요.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 품안과 같이 포근하지 않습니까?”
  그가 고향을 찾아 정착한 이유는 이처럼 너무나 소박하다.
  이제 그의 고향집 마루에는 언제나 삽, 낫, 호미, 괭이 등 각가지 농사용 철물들을 누구나 항상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가지런히 정리해 두고, 마을 주민들의 고장 난 농기구를 수시로 수거하여 수리해 돌려주는 정성도 아끼지 않고 있다.
 “제가 이웃 주민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역할은 이것 이외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고향사람들은 나의 귀농을 격려해주고 영농기술도 가르쳐주니 오히려 제가 더 큰 도움을 받고 있지요.”


새벽 5시 참깨 밭을 돌아보고 있는 최용석씨
새벽 5시 참깨 밭을 돌아보고 있는 최용석씨

  겸손한 새내기 농부 최용석! 오늘도 그의 하루 일과는 오전 5시에 농장에 나가 저녁 8시까지 농장에서 각종 작물과 대화하고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인생 제2막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고 있다.


 “아침 일찍 농장을 돌아보면 새들도 노래하지만 복숭, 자두, 매실나무들이 가지를 벌리고 춤을 추듯 나를 맞이하지요.”
  그는 지난 3월부터 시작한 경산시농업기술센터의“2018년 귀농 귀촌 교육”에 입소하여 3개월간 교육과정을 모두마치고, 자신의 영농사례를 발표하여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용석(崔溶錫)!
  그는 늦깎이 농민이지만, 향민들에게는 최고의 농사꾼이다.
  그가 경작하는 작목만도 복숭아, 자두, 매실, 고구마, 참깨, 콩 등 다양하다. 그리고 그는 농민이자 임란(壬亂) 자인현역 의병장이었던 최문병 선생의 13세손으로, 영천 최씨 군수공파 원당문중의 회장이다.
  누구보다 위선사(爲先事)에 관심이 많은 최회장은 최근 대동보를 정비하고, 13대조인 최문병 의병장의 창의와 업적을 현창하는 데 몰두하면서 최근에 이를 현창하는 최문병 의병장의 묘역과 임란창의발상지에 대한 기념물지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에게는 이제 남은 하나의 꿈이 더 있다.
  그의 꿈은 70대 중반에 이르면서 뜻을 같이한 지인들과 자주 만나 밥도 먹고 여행도 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노년에 즐거움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벗하여 이야기하고, 같이 밥 먹고, 함께 여행하는 것, 이보다 또 다른 행복이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최회장의 노년의 꿈은 이 같이 소박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는 부인 석종인 여사를 항상“대장”이라 호칭하며 감사해 하고, 또 열심히 자신의 뜻을 따라 훌륭하게 성장해준 아들과 딸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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