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진정한 『약손』 향토 출신 정문원 회장
이 시대의 진정한 『약손』 향토 출신 정문원 회장
  • 김종국 기자
  • 승인 2019.06.13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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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매약국 약사 정문원
도매약국
약사  정 문 원

  경산군약사회 회장, 경산시 번영회 고문, 임란하양八의사현창 추진위원장, 경상북도 도의회 의원, 하양초등학교 총동창회장, 하양무학중고등학교 육성회장, 경산군체육회 실무부회장, 바르게살기 경산군협의회장, 통일주체국민회의 1,2대 대의원 등, 다양한 직함으로 호칭 되는 정문원(鄭文源, 86) 회장.

  그는 경북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가 고향인 토박이 약손 하양 도메약국의 창업자이다.
 “지난 2017년에 우리약국이 경산시 약국을 대표하는「착한약국」17개소 중 한 업소로 선정되었지요.”

  그는 그 어떤 직함보다 약사라 불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한다.
  그는 1934년 12월 21일, 일제강점기에 현 경산종묘산업 특구로 지정된 하양읍 환상리의 한 농부의 4남매(2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나, 당시 하양국민학교(현 하양초등학교)를, 대구농림중학교와 계성고등학교를 거처 영남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했다.
  정문원(86) 회장은 동래(東來) 정씨(鄭氏)로, 신라 유리왕(琉璃王)으로부터 사성(賜姓)을 받은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지낸 정회문(鄭繪文)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시조 지백호(智伯虎) 공은 삼국시대 정씨 도시조인 취산진지촌의 지방세력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처음에 화산(花山)에 내려왔다가 기원전 69년 3월 초하루에 다른 다섯 촌장과 함께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 임금을 세울 것을 논의하였는데, 이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맞이하여 기원전 57년에 임금[거서간(居西干)]으로 추대하였다는 인물로, 서기 32년(유리이사금 9) 봄에 유리이사금이 사로육촌을 육부(六部)로 개편했을 때, 취산진지촌은 본피부(本彼部)로 변경되었으며, 정씨(鄭氏) 성을 하사받았다고 하였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만 등장하는 지백호(智伯虎)는 경주정씨(慶州鄭氏)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정씨의 도시조(都始祖)로 알려졌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또한, 정문원 회장은 1592년 임란이 발발하였을 때, 관내 진량읍 선화리 애련정에 봉안된 정응지(鄭應智) 선생의 3형제 중 정응례(鄭應禮), 정응삼(鄭應參) 선생이 분연히 일어나 창의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선무원종 이등공신인 정응례 선생의 후손이기도 하다(내 고장 전통 p. 50).

▲ 애련정 농수 정공 포공비(褒功碑)
▲ 애련정 농수 정공 포공비(褒功碑)

  앞의 정응지(鄭應智) 선생은 임란 당시 두 형 대신 노모를 봉양하면서 지금의 압량면 현흥리 일대의 건답(乾畓)에 연지(蓮池)를 사비로 축조하고, 또한, 금호강에 보(洑)를 설치하여 일대 농민들을 구휼(救恤)하였던 의인(義人)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후손인 정문원 회장은 지난 1991년 6월 20일에 시행된 경산군 제1선거구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경상북도의원에 당선되어 경상북도 의회 문교사회위원회 위원으로, 경산학원도시 개발과 하양 금락지역 철도건널목 지상화, 금호강변 순환도로 개설, 농촌지역 환경오염 방지 대책과 대구지하철 경산·하양 연장 사업을 강력히 추진하여 이를 가시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오늘날 금락철도건널목이 지상화되고, 금호강 일대 우회도로 개설, 대구대하철 1호선 하양 연장 등은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다.
  정 회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선조의 유업을 이어받아 구 하양현역 임란창의 8의사에 대한 위상 정립과 현창(顯彰) 사업에 온갖 노력을 다하여 왔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임진하양의군위령비”를 하양읍 구청사 전정으로 이운하고, 하양 임란 창의 의사들을 위한 추모 사우(祠宇) 건립에 매진하고 있다 하였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나라를 구하러 나서던 창의 의사가 억울하게 참살당했다는 기록과 그들에 대한 역사적 예우입니다.”하며, 류승룡 선생의 징비록(懲毖錄)과 면와(勉窩) 황경림 선생의 면와실기(勉窩實記)“三十日聞本邑防禦軍數百過永川遇龍宮縣監禹伏龍嶺軍赴兵營□不下馬伏龍怒麾軍掩殺無一人生極爲參愕”을 근거로 임란 당시 억울하게 순절한 하양 의군(義軍)들의 명예회복을 주장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하양현에서 영천성으로 출정하는 길목을 지금도“아낙고개”,“아리랑고개”라 하지 않습니까?”하면서 역사는 숨겨서도, 왜곡되어서도 아니 된다 하였고, 그래서 20여 년 전에 하양읍민들이 아낙고개 부근 동산에 의사들을 추모하는“임진하양의군위령비”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회고하였다.

  최근 들어 정 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자택에서 요양 중이지만, 임란 하양 의군에 대한 자신에 복안만은 한치 흔들림도 없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것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당시 지역 의병장이신 황경림 선생이 거짓말을 하였단 말입니까?”하며, 이 모두는 후대 이 지역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하양인들이 바로 잡아야 할 몫이라 하며 열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또한, 그는 이에 대하여“이를 현창(顯彰)하고 추모(追慕)하는 사업은 창의 후손들의 노력보다 먼저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앞장서야 합니다.”하며, 정부에서 건립부지라도 제공하면 자신의 사재(私財)라도 털어서 사우(祠宇) 건립에 동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하여 경산시번영회 회장 최재림(83, 경산시번영회 회장)씨는“정 회장은 우리 경산 사회 곳곳에 말 없는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정 회장은 자신을 공치사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하며 정문원 회장에 대한 그간의 숨은 공로와 애향 정신을 틀어 놓았다.
 “정 회장은 돈을 빌려줄 때도 차용증을 받지 않고, 한 번도 독촉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자신이 사회에 희사한 돈만 하더라도 작은 부자 몇몇 재산은 될 것입니다.”하며, 중학교부터 열차로 대구로 통학하면서 그를 사귀었다는 최재림씨는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며, 취재하는 동안 내내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1968년 하양 청녕회를 조직, 이를 후원하였고, 1980~1985년까지는 하양읍 체육회 회장으로서 현 하양초등학교에 배구부를 창설, 지금까지도 정 회장이 후원한 배구부가 전국 1, 2위를 석권하고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또한, 하양 전화국 건립을 위해 자신의 부지를 기증하였다는 소문도 들을 수 있었다.
 “그간에 제일 기쁜 기억이라면, 부모님과 제가 태어난 고향 하양읍 환상3리에 마을회관 건립에 힘을 보태었을 때입니다.”하며 새색시 같은 수줍음이 가득하였다.
  하양의 약손 정문원 회장은 비록 최근에 건강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새벽 일찍 약국 문을 열어 새벽에 찾아드는 급한 환자를 맞이하고 있다 하였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의인(義人) 정신에서만이 가능한 것은 아닌가 생각에서 취재 중 내내 사뭇 진지하기만 했다.
  정문원 회장, 그는 약손으로서 몸에 상처를 다스려 주고, 자신에게도 숨기는 이웃사랑 정신은 진정한 이 시대의 큰 약손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받은 수상(受賞)에 대한 필자의 질문에“그간 받은 정부 포상, 각계의 감사패 등이 너무나 쑥스럽기만 합니다.”하며, 무엇보다 자식들이 자기 뜻에 따라 주니 고맙기만 하다 했다.
  그의 슬하에는 6남매(2남 4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은 서울에서 의사로서 인술(仁術)을 베풀고 있고, 둘째는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필하고 있다 하면서 그의 굵은 주름 사이에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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