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묘목홍보전시관 개관
경산묘목홍보전시관 개관
  • 김종국 기자
  • 승인 2021.06.08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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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종묘산업의 100년사와 향후 비전 눈으로 체험
▲ 경산묘목조합 정희진 조합장
▲ 경산묘목조합 정희진 조합장

  경산시는 경산 묘목의 기원과 향후 비전을 통한 경산 묘목 100년사 뿌리 찾기를 위하여 전국 최대 묘목 주산지인 경산 묘목을 역사적으로 정리하여 고증하고 바르게 홍보함으로써, 경산 묘목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하여 지난 2020년 1월부터 2021년 3월에 걸쳐 경산종묘산업 특구 내 경산종묘유통센터(경산시 하양읍 황새길 10)에 총사업비 5백만 원(국비 285, 시비 2백만 원)으로 223㎡(1층 118, 2층 105㎡) 규모의 경산묘목 홍보 전시공간(㈜디앤지예와가 기획) 조성 지난 4월 1일 준공식을 가졌다.

▲ 경산종묘유통센터 내 조성된 경산묘목 홍보전시관 전경
▲ 경산종묘유통센터 내 조성된 경산묘목 홍보전시관 전경

  2013년에 발표된 경산묘목의 기원과 향후 비전 학술 세미나 보고서에 의하면, 경산묘목의 출발 기준점은 1912년이다.
  이는 지금의 하양읍 대조리에 일본인 과수 기술자 “고바야시”가 전거(轉居)하면서 상묘(桑苗)를 생산하게 되었던 동기가 곧 대조리 일대의 과수농가에 묘목재배란 새로운 영농과제가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일인(日人)“고바야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영농기법이 도입되게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는 일제강점기로, 일본의 군수산업 정책의 하나로 장려되었던 누에치기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농업 제1정책으로 뽕나무 재배사업이 강력히 시도되었고, 이에 전국 농가에 양잠재배기술과 뽕나무 생산이 정책적으로 독려 되면서, 이의 필요 물량 충족을 위하여 경북 일원의 뽕나무 묘목재배와 공급에 일본인“고바야시”가 선봉에 선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농업정책은 곧 경산지방에 금호강 연안에 질 좋은 사질양토가 1차적 적지로 검토되어 현 하양읍 대조, 환상 지구가 상묘(桑苗) 생산 적지로 결정되면서 그림 3-1일대를 중심으로 5,000여 평의 농지에 대한 뽕나무 묘목재배가 본격화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동 보고서에는 하양 대조리 일원에 뽕나무 묘목 생산이 본격화될 무렵인 1910년 전후의 경산지역의 묘목 생산에 대하여《조선 세시기》에는, 이미 뽕나무를 재배하여 양잠을 치는 기술이 최고에 달했고, 조선 시대부터 왕실에서도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 묘목재배에 관한 기술은 구체적이지 못하였으나,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미 상묘(桑苗)를 키우는 기술이 보편화되어 있어 일인(日人)“고바야시”의 신기술 보급은 별다른 저항 없이 일대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되었던 것이라 하였다.

  당시 경산지역은 오목천 상류 지점인 용성면 송림리에 한지 생산을 위한 닥나무 재배가 활발하였고, 오목천 중류 지점인 용성면 곡란. 곡신, 미산리 일대와 자인면 신도리, 압량면 신월리 일대에서 질 좋은 재래종 뽕나무가 생산되어 양잠 농가의 주 소득원이 되었다고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경산묘목의 100년사는 곧 경산묘목만의 독창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경산묘목의 신기술 보급은 지난 2007년 지식경제부로부터 이 지역이 경산종묘산업특구로 지정되면서 더욱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정희진 경산묘목조합장은, 경산묘목 홍보전시관은 경산묘목 100년사와 경산묘목과 경산종묘산업의 독창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경산종묘산업특구 내 종묘산업의 유통 활성화와 신 소득원 발굴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 피력하였다.

  이 밖에도 경산묘목 우수성을 대내외에 파급하기 위하여 해마다 종묘산업특구지역 시민걷기대회와 묘목 나누기 운동 등, 다양한 홍보 효과를 전개하여왔으나, 이번 경산묘목 홍보전시관 개관은 경산묘목의 우수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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