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자인향교 석전대제 봉행

  • 기사입력 2022.03.16 23:09
  • 기자명 김종국 기자
▲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에 자리한 자인향교(사진 자인향교 모성루)
▲ 경산시 자인면 교촌리에 자리한 자인향교(사진 자인향교 모성루)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6호(1985년 8월 5일)로 지정된 바 있는 자인향교(전교 김상도)는 지난 음력 2월 상정일(上丁日, 첫 번째 丁日)인 3월 5일(양력) 오전 10시에 춘계 석전대제(釋奠大祭)를 봉행하였다.

  이날 대제(大祭)는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코로나19의 철저한 방역 수칙 준수와 함께 자인향교 출입 지역 유생 등 50여 명이 참례한 가운데, 초헌관(初獻官)에 김상도(69) 현 자인향교 전교가, 아헌관(亞獻官)은 이원종(79) 탤런트 겸 현 경산시립극단 예술감독이, 종헌관(終獻官)은 최용석(77) 현 영천최씨 원당 문중회장이, 분헌관(分獻官)은 유학 이상정(68)씨와 대구과학대학교 최주근(67) 교수가, 집례(執禮)에는 전명수(77) 전 교육공무원이, 대축(大祝)에는 유학 최선교(77)씨, 알자(謁者)에는 유학 김영구(64)씨가 각각 소임하였다.

  2002년 6월에 편찬된 자인향교지에 의하면, 자인향교는 본래 고려 공민왕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하였고, 1562년(명종 17)에 경주 부윤 이정(李楨)이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15년(광해군 7)에 도천산(到天山) 아래에 이전하였다가 1728년(영조 4)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900년과 1922년에 각각 중수하였다는 대성전(大成殿)
▲ 1900년과 1922년에 각각 중수하였다는 대성전(大成殿)

  1900년과 1922년에 각각 대성전(大成殿)을 중수하였고, 1924년에 명륜당(明倫堂), 1926년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현존건물로는 6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5칸의 모성루(慕聖樓), 4칸의 동재(東齋), 평삼문(平三門), 4칸의 하당(下堂), 2칸의 제기고(祭器庫) 등이 있다. 

  건축 형태는 명륜당이 있고 그 뒤쪽에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남향한 경사면에 3단으로 층을 이루어 아래부터 외삼문, 명륜당, 대성전으로 배치되었고, 대성전 왼쪽에는 서무, 뒤쪽에는 화계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 대성전 내부에 진설한 제수와 제의 의례(초헌관 김상도 전교)
▲ 대성전 내부에 진설한 제수와 제의 의례(초헌관 김상도 전교)

  석전(釋奠)이란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성선현(先聖先賢)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이다. 
  여기에 석(釋)은 '놓다(舍)' 또는 '두다(置)'의 뜻을 지닌 글자로서 '베풀다' 또는 '차려놓다'라는 뜻이며, 전(奠)은 추(酋)와 대(大)의 합성자로서 '酋'는 술병에 덮개를 덮어놓은 형상이며, '大'는 물건을 얹어두는 받침대를 상징한다. 
  따라서 석전은 생폐(生幣)와 합악(合樂)과 헌수(獻酬)가 있는 성대한 제전(祭典)으로 석전제·석채·상정(上丁)·정제(丁祭)라고도 한다. 

  이와 유사한 말로 석채(釋菜)가 있는데, 이는 나물 종류만 차려놓고 음악이 연주되지 않는 조촐한 의식이다.
  석전의 의식절차는 홀기(笏記)에 의해 진행되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규격을 그 원형으로 하고 있다. 제관은 전일(前日)에 재계(齋戒)를 하는데, 산재(散齋) 2일, 치재(致齋) 1일을 행한다. 

▲ 임인년 석전대제(춘) 집사분정기
▲ 임인년 석전대제(춘) 집사분정기

  봉행절차는 초헌관(初獻官)이 폐백(幣帛)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에 이어 초헌관이 신위전(神位前)에 첫 술잔을 올리고 대축(大祝)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인 아헌례(亞獻禮),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초헌관이 음복위에서 음복잔을 마시고 수조하는 의식인 음복수조례(飮福受胙禮), 대축이 변과 두를 거두는 의식인 철변두(撤籩豆), 초헌관이 망요위에서 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것을 보는 의식인 망료례(望燎禮) 등으로 진행된다.

  보편적으로 석전복식에는 금관제복과 유건도포(儒巾道袍)가 있다. 
  금관제복에는 금관·홀(笏)·수(繡)·중단(中單)·상(裳)·패(佩)·방심곡령(方心曲領)·흑각대(黑角帶)·말(襪, 버선)·이(履, 신)·폐슬(蔽膝, 무릎가리개)·대대(大帶, 큰띠)·의(衣, 겉에 입는 옷)이며, 유건도포에는 유건·도포·목화(木靴, 목이 긴 신발)·사대(紗帶, 도포끈)·행전(行纏) 등이다. 석전대제는 정숙하고 장엄한 분위기 속에 제례악이 연주되고 일무가 추어지는 종합 예술적 성격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이는 집례가 읽어 내려가는 제의 진행 의례(사회 시나리오)가 모두 한자 원문으로 표기되어 있어 적잖은 한문 실력자를 제외하고는 읽지도 해석도 어렵다는 점이다.

▲ 한자 원문에 의한 진행(전명수, 77)과 알자의 안내를 기다리는 헌관
▲ 한자 원문에 의한 진행(전명수, 77)과 알자의 안내를 기다리는 헌관

  이에 대하여 자인향교 전교 출신인 천기찬(85) 성균관 전의는,“지금까지는 향교에 몸담은 60~70대 지역 유생들이 행사 때마다 답습적 학습을 통해 큰 무리 없이 집례 역할을 원만히 수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문 세대가 아닌 청소년 세대들이 이를 전수해 나가기에는 충분히 고려하여야 할 사안임은 부정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이미 한자로 엮어진 불교 경전(반야심경)도 불교계에서 먼저 우리말로 바꾸어 나가는 예를 보더라도 앞의 제안은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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