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경제이야기_[28]. 벗 꽃이 만발한 봄날의 한일관계 이야기

  • 기사입력 2023.04.05 12:40
  • 기자명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벗 꽃이 만발한 봄날이다. 봄을 환영하는 꽃들은 많지만 봄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나리, 진달래, 복사꽃이 봄의 대명사이다. 그런데 봄을 정말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은 벗 꽃이다. 우리나라에도 벗 꽃이 화려한 곳은 많다. 진해, 경주보문, 여의도를 비롯한 삼천리 곳곳에는 모두 지금 쯤 벗꽃의 화사함이 대단하다. 벗 꽃은 퓨리처 상에 빛나는 마가레트 미첼 여사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서도 화려한 인상을 남겨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바람결에 휘날리는 벗 꽃은 미국 남부 타라의 옛 향수와 삶의 추억을 그리게 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런데 벗 꽃이라면 이웃나라 일본도 대단하다.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벗 꽃을 가져가서 그들은 국화로 삼았다고 한다. 일본생활을 할 때 주말이면 계절 없이 도쿄의 우에노 공원을 가끔 들렸다. 우에노 공원은 도쿄 시민의 대표적인 휴식처이자 종합문화 향수(享受)의 공간이다. 곳곳에 다양한 일본문화를 체험할 만한 시설들이 갖춰져 있다. 역사관, 미술관, 서예관, 분재관, 연주관 등 필요한 문화를 즐길수 있는 대부분이 갖춰진 도쿄시민들의 양질의 힐링 플레이스이다. 공원 주위에는 벗 나무들이 수없이 들어서서, 수많은 새들과 어우러지면서 그들의 國花 사쿠라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3월이 되면 우에노 공원은 상춘객으로 언제나 가득하다. 그 밖에도 도쿄의 메이지 황궁이나 긴자거리, 오사카의 오사카 성, 그리고 규슈의 구마모도 성 부근에도  벗 꽃은 대단하다. 일본 곳곳에 심어진 벗 꽃을 보면 그들의 사쿠라 정신을 연상케도 한다.

  그래서 봄은 일본에게는 벗 꽃의 계절인 셈이다. 벗 꽃을 국화로 삼은 일본인들은 사쿠라 같은 기질을 가진 민족이라고 흔히들 얘기 한다. 사쿠라를 사랑하고 즐겨, 사쿠라 축제도 요란하다. 벗꽃이 만개할 쯤에는 꽃을 좋을 좋아하는 일본 도쿄시민들은 꽃 축제(하나 마쯔리)를 곳곳에서 요란하게 펼친다. 노래와 춤, 연극을 포함한 다양한 축제가 전국적으로 펼쳐진다. 도쿄에서는 아사쿠사를 비롯한 긴자, 아오야마도리, 하라주꾸, 신주꾸, 메이지신궁 등 어디서나 주요지역에는 꽃 축제가 대단하다. 그들의 행실을 보면 꽃을 좋아하는 연약하고 싹싹하며, 예의 바른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20여년 전 일본 동경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와세다 대학에 볼일이 생겼다. 학교의 위치를 잘 몰라 아침 일찍 학교 근방에서 대학을 찾던 중, 길가에 사람도 없고 해서 어느 가게에 들어가서 가게 주인에게 대학의 위치를 물었다. 가게 아주머니는 이른 아침 가게 문을 여느라 매우 바빴다. 공연히 예의 없이 이른 아침에 남의 가게를 들리는 실수를 했구나 하고 미안 해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상냥하게 웃으며 하던 일을 금방 멈추고 빠른 걸음으로 가게 밖으로 나와서 "저 멀리 푸른 지붕 건물 왼쪽 길로 가면. 곧 와세다 대학이 나옵니다."라고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는 것이었다.

  그 후 일본에서 얻은 첫 인상이 일본 국민들은 스마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은 연구생활을 마감하는 일 년 동안 변함이 이어졌다. 그런데 일본사람들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보여준 국가 일본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잘못에 대한 사과를 싫어하고, 강제징용 등 일본이 우리에게 입힌 피해에 대하여 인정하고 사과하기를 싫어한다. 일본 기시다 정부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도 역대의 정부가 한대로 하겠다면서 직접 사과를 피했다. 1993년 고노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이어, 1998년 김대중ㆍ오브치 선언에도 미흡한 수준이다. 더욱이 기시다 정부의 전신인 아베정부는 아예 사죄와 피해보상을 거부했다. 전쟁국가를 꿈꾸는 일본 극우들의 對 한국 자세는 최근 아베정귄 이후로 크게 달라진 것이다. 그것 때문에 문재인 정권의 불가피한 한일관계단절을 가져왔다. 한일관계의 깨끗한 새출발을 위해서는 흔쾌히 개별피해를 보상하고, 과거사를 깨끗이 청산하는 사쿠라 같이 깨끗한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 컬럼비아대 루스 베네딕트 교수가 쓴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은 이미 오래전에 출판되었고 일본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글판 번역서도 이미 1990년대에 여러 권 나왔다. 놀랍게도 베네딕트 교수는 일본에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문화인류학자이지만, 그녀는 너무도 자세하게 일본인들의 성격을 잘 분석해 냈다. 그녀는 서양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인들을 미국정부의 연구비를 받고 2년간 연구하여 1946년 이 책을 출간했다. 2중적 성격을 가진 일본인들을 '국화와 칼'이란 두 개의 배치되는 상징적 요소를 써서 잘 분석한 명저이다. 여기서 국화는 일본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국화를 그들의 국화 사쿠라 보다도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국화는 청경, 고결, 조용, 엄숙의 상징이다. 고결하게 핀 국화, 그 속에 칼이 숨어 있다는 뜻에서 멋지게 붙여진 책명이다. 책의 곳곳에서 일본인들의 이중적인 성격을 잘 묘사해 내고 있다. 역사적인 한ㆍ일 관계에서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나고 있다. 개인적인 측면에서 일본인들은 경우 바르고 친절하며 정직하지만, 국가 간에는 그런 면을 찾기가 어렵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고, 강제징용과 위안부 사건을 부인하며, 일제치하 문화말살 정책을 인정치 않으려 한다. 사죄를 싫어하고 배상에 인색하며, 자국이 저지른 죄 값을 지불하기를 싫어한다.

  최근의 한ㆍ일 정상회담을 놓고 국민들의 다수의견이 일본의 이러한 태도에 미온적인 정부에 대하여 불만족이다. 일본의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과 통절한 사죄가 없는 관계개선은 굴욕외교라고 비판한다. 이점에서 나치정귄하 또는 2차 대전 전후 독일이 폴란드 등의 피해국에게 대하는 자세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일본이 옹졸하고 비양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최근의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했고, 강제동원에서 ‘강제’ 라는 말을 뺏다. 그러나 일본의 강제동원 당해 기업 미츠비시나 신일본제철은 한국 이외의 피해국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에 일일이 사죄하고, 개인적인 보상도 해주었다. 이를테면, 핀리핀, 대만, 중국 등에 대해서는 당해기업들이 피해자들을 직접 방문하여, 개별적인 사죄와 보상을 했다. 2012년 한국 대법원이 피해자 개인청구권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했지만, 일본은 1965년 한일정상회담에서 이미 배상문제는 완전히 끝난 얘기라고 한다. 한국에 대해서만은 특별히 인색하다는 느낌이다.

  벗 꽃이 만개하는 화려한 봄날 일본이 자신들의 국화, 벗 꽃처럼 밝고 환한 마음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강자에게 아부하고 약자에게 냉혹한 일본의 이 중성이 깨끗이 사라지기를 기대해 본다. 오래 만에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과 한일 양국의 관계정상화라는 대사를 놓고 양국이 진정으로 모두 윈윈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도 일본의 강자다운 화끈한 행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우리 정부는 보다 진지한 노력을 해주었으면 한다. 국민을 편 가름 하지 말고, 정부가 역사의식과 민족적 자존심을 상처 받은 국민을 위해서 정부는 자존감을 갖고 일본에게 진실한 태도를 요구해아 할 것이다. 박진 외교부장관의 표현대로 우리가 어렵게 반 컵의 물을 채웠다면, 나머지 반 컵을 성실하게 채우는 일본이 되도록 진지한 노력을 해 주었으면 한다. 좋은 정부는 약자의 눈물을 닦아 주고, 국민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정부일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은 경제와 군사 그리고 문화의 모든 면에서 일본에게 크게  기죽을 것이 없는 G10~G7 국가이다. 우리도 이제는 일본에 대하여 지나친 열등의식이나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제 일본은 과거사에 대하여 더욱 정직한 자세를 견지하고, G3국가로서의 자존감을 지켜나감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서 일본이 취해야할 대의적 자세라고 본다. 그리하여 지금처럼 따뜻한 봄날, 벗꽃과 사쿠라의 화사함을 함께 예찬하며, 선의의 문화경쟁을 통해 세계 속에 문화선진국으로 거듭나는 양국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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