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통곡

  • 기사입력 2023.06.11 20:28
  • 기자명 김미숙
                                             김미숙
                                             김미숙

  아름다운 통곡

  허물어진 사원은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를 제압한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기운의 세례를 받는 냥 가슴이 뭉클하다. 이파리 하나 없는 스펑나무를 받들고 서 있는 사원은 폐허가 된 것으로 보아 오랜 세월이 흘렀음을 짐작케 한다. 나는 지금 캄보디아의 사원, 앙코르 톰에 와 있다. 담과 담 사이는 마치 용암이 흘러내린 형상이다. 사원을 짓느라 동원되었을 사람들의 힘겨움이 사암에 새겨져 있다. 돌 틈 사이로 사원 곳곳에 파고든 뿌리들은 사원과 나무가 한 몸이 되어 관광객의 시선을 끌어모은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 왕조 자야바르만 7세 때 재건했으며 왕궁과 사원을 비롯한 대도시의 규모를 갖추었다. 성벽이 둘러싸여 있으며 가운데는 바이욘 사원이 우뚝 솟아 있다. 동서남북과 왕국을 잇는 다섯 개의 문이 있으며 북서쪽으로 빠푸욘 사원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가면 사열대 행진을 하는 코끼리 테라스가 보인다. 오랜 세월 왕가에 문둥병이 걸려서 세상과 단절되었다가 공개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했다.    

  빛바랜 사원은 나무와 함께 오랜 세월 공생관계로 의지하고 있다. 퇴색된 유적만 있고 길게 뻗쳐 있는 나무가 없다면 이렇듯 유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다. 나무를 베어 내고 뿌리를 뽑는다면 사원은 그대로 무너질 것 같은 태세다. 한 번 맺어진 인연으로 수천 년 동안 끈끈한 정을 과시하고 있는 폼이다.

  허물어진 벽 사이로 압사라 조각이 돋보인다. 조각들이 서 있는 옆에 나란히 서서 얼굴을 갖다 댄다.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저벅저벅 벽 사이에서 걸어 나올 것만 같다. 아주 작은 체구다. 무더위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야무진 모습이다. 눈 매무새도 날카롭다.

  한 시대의 문화를 찬란하게 향유했으면서도 후세대까지 남겨진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음에 경이롭다. 고개를 돌려 여기저기 새겨져 있는 돌조각들에게 눈을 맞추자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보석의 방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자야바르만 7세’가 어머니를 위해 만든 방이다. 나병 환자였던 어머니를 위해 몸과 마음이 무릉도원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게 효를 바친 곳이다.

  몇 세대를 거쳤지만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공간이 오랜 세월 정글 속에 묻혀 있다가 어느 여행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병에 걸려 전염되었던 사람들이 세상과 단절되어 소식이 끊겼을 터이고 서서히 죽음까지 이어지지 않았을까. 천장이 뚫린 사각형의 방에 햇빛이 쏟아진다. 그 빛은 머리 위 창가에서 머문다. 환자였던 어머니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빛을 반사시켜 놓았다. 천장은 하늘과 맞닿을 듯 가깝다. 살아서 닿을 수 없었던 하늘에 더 가까이 가려했던 자야바르만의 염원이 담겨 있는 뜻은 아닐까. 어머니와 함께 하고픈 그의 마음이 엿보이는 것 같다.

  통곡의 방으로 들어선다. 벽에 많은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루비와 사파이어가 박혀있던 자리다. 가슴을 두드리며 한을 품었던 그의 모습을 떠 올린다. 효를 다한 그의 목소리가 어머니에게 들리지 않게 가슴팍을 쳤던 곳이다. 내 가슴을 서너 번 쳐 본다. 조용하던 방이 쾅쾅 울린다. 소리를 질러도 두발로 힘차게 뛰어도 꿈쩍도 하지 않던 소리가 가슴을 탕탕 두드리니 좁은 공간 속에서 쿵쿵 울리는 것이다.

  눈을 감고 통곡의 소리를 듣는다. 임종을 앞두고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이 하필 이 통곡의 방에서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버지는 지하 땅굴에서 석탄 캐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수 백 미터 지하에서 다이너마이트로 발파 작업을 하던 중 갱이 무너졌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노후한 시설로 인재 사고가 났지만 아버지의 실수인 것처럼 꾸몄다. 회사에서는 일을 덮기만 급급하느라 구조가 늦어졌다.

  석탄이 삽시간에 아버지의 몸을 에워쌌다. 옴짝달싹하지 못한 아버지는 지하 어둠 속에서 며칠 동안 갇혀 있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고 까닥하면 떨어질 석탄에 함몰될 것 같은 불안감에 떨었다. 아버지는 손으로 쇠 파이프를 내리치며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그 신호는 바깥세상과 소통이 되지 않았다.

  자야바르만이 돌림병으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 채 단절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처럼 아버지는 며칠 동안 얼마나 불안하고 적막했을까. 나는 아버지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갱 안에서 현재와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숨죽여야 했던 아버지가 통곡의 방에서 애타게 그립다.

  가슴을 탁탁 두드리며 아버지의 삶을 조명해 본다. 내가 첫아이를 품었을 무렵 아버지는 세상의 끈을 놓으셨다. 갱 속에 갇힌 후유증으로 깊을 대로 깊어진 아버지의 폐병은 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너무나 그리워 몇 번이고 가슴팍을 쳤다. 쿵쿵 쿵 울리는 소리는 아버지가 있는 하늘까지 맞닿을 것만 같았다.

  자야바르만 7세는 어머니를 위해 효를 다했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해 드린 게 아무것도 없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이 폐허가 된 사원 속에서 속죄하듯이 숙연해진다. 통곡의 방에서 바깥으로 나오니 햇살이 눈부셨다. 정수리 위에 서 있던 뜨거운 공기가 남실바람에 서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사원을 올려다보니 큰 규모와 정교한 예술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폐허가 된 사원의 곳곳은 아직도 복원의 손길이 필요한 듯했다. 유네스코에서 관광객의 통행에 안전을 기하기 위해 최소한의 길만을 보수하고 있음을 엿본다. 짝을 찾지 못하고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압사라 돌조각들이 수만 가지의 모양으로 흩어져 있다. 그들이 제 짝을 찾느라 어수선하다.

  뿌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나무들은 유적이 빛나도록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을 것이다. 그 자리가 더욱 빛나는 것은 유적도 나무를 끌어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도 혼자는 살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 모습처럼 사원과 나무도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사원을 나와서 먼지가 펄펄 날리는 길을 한참 걸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무너진 돌 지붕 틈 사이로 석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 속에서 아버지의 웃는 모습이 보이고 어머니를 위해 효를 다한 자야바르만 7세의 모습이 환영처럼 지나간다. 캄보디아 앙코르 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폐허’로 아버지의 환영과 함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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