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똥거름 배달

  • 기사입력 2023.11.16 16:33
  • 기자명 김미숙
                                             김미숙
                                             김미숙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복숭아와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이면서 농산물 수출하는 일도 한다. 과일나무에 이끼 제거하는 것과 미나리가 아삭한 맛이 나게 하는 농자재 홍보를 하면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농업 컨설팅도 한다. 특히나 가을걷이가 끝나면 유기질 비료 배달하는 배달꾼이기도 하다. 

  말이 유기질 퇴비이지 바로 표현하자면 동물들의 똥거름이다. 소똥 닭똥 돼지 똥 갈매기 똥 염소 똥까지 모든 똥들은 밭을 거름지게 만든다. 요즘 쓰이는 똥들은 발효를 시킨 다음 포대기에 담아서 상품화되어 나온다. 그것을 똥이라 하지 않고 유기질비료 혹은 퇴비라 부른다.  

  똥은 식물이 자라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물 빠짐이 좋지 않거나 푸석푸석한 땅에 퇴비를 뿌려주면 기름진 땅으로 변한다. 농민들은 농사가 끝나고 겨울로 들어설 무렵 한 달 동안 읍면사무소에서 보조 신청을 하고 이듬해 봄에 유기질 퇴비를 받는다. 농민이 신청한다고 원하는 만큼 다 나오지는 않는다. 땅의 평수와 나무의 나이테에 따라서 정해진 양만큼 나온다. 유기질 비료 배달은 박리다매라서 숫자 계산을 잘 해야 하지만 그보다 육체적으로 힘이 든다. 남편은 유기질 비료를 한 차씩 싣고 옆 동네 아랫동네 윗동네로 몇 달간 오지게 나른다. 

  유기질 비료를 판매하고 배달한 지 십 수 년이 넘었다. 처음 시작할 땐 차에 싣고 오르내리는 것을 모두 수작업으로 했다. 한포 당 20kg인데 처음 옮길 때는 가볍게 느껴지지만 몇 포대 들지 않아서 손에 힘이 빠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초가을부터 늦봄까지 몇 달 동안 수만 포 날랐더니 손목과 팔다리에 무리가 왔다. 힘이 약한 나는 일을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허리 디스크와 협착증이 왔다. 

  남편도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오므리면 중지가 잘 펴지지가 않았다. 얼마 전에 시술을 했는데도 차도가 없었다. 무거운 것을 많이 들어서 어깨도 아프다며 팔이 올라가지도 않는 상태였다. 

  찬바람이 심하게 불던 날, 남편이 배달하러 간다기에 따라나섰다. 혼자 사는 할머니가 배달을 재촉해서 지게차로 두 팔레트 실었다. 일 톤 차에 백오십 포를 싣고 출발하는데 차가 휘청거렸다. 옆자리에 앉은 나는 뒤에 실려 있는 똥거름 포대기가 도로에 떨어질까 봐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배달할 위치를 확실하게 알지 못해서 내비를 켰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은 실핏줄처럼 퍼져서 어느 길로 들어가야 할지 몰랐다. 내비 속에 있는 여인은 산골짜기 쪽으로 안내했다. 저기 뭐가 있을까 싶었다. 저 높은 곳에 농사짓는 천수답이 존재할까 생각하는 사이에 차는 오르막으로 거북이걸음을 했다. 좀 더 오르자 몸이 뒤로 쏠리면서 짐칸에 실렸던 거름도 뒤로 넘어갈 태세였다. 

  산 끄트머리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짐 무게로 인해 뒤로 밀리면서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는 멈추지 않았다. 핸들을 돌리자 뒷바퀴가 세 아름 되는 큰 상수리나무에 걸리면서 트럭은 멈추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득했고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니 천 길 낭떠러지에 오금이 저렸다.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차를 파킹 시키고 사이드브레이크를 당긴 다음 밖으로 나와서 견인차를 부르기 위해 휴대폰을 눌렀지만 통화권 이탈 지역이라는 목소리만 들렸다. 

  남편한테 똥거름 배달하는 일은 그만두자고 했다. 거름 배달이 너무 힘들어서 식구가 모두 몸이 다 망가지겠다고 했다. 이제는 이 일을 그만해도 먹고 살 수 있지 않느냐며 울먹였다. 나의 투덜거림을 다 듣고는 남편이 입을 열었다. 일을 하다 보면 힘든 일 어려운 일 포기하고 싶은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고 했다. 쉽고 편한 일이었으면 우리에게 돌아왔겠나, 우리가 일이 없을 때 똥거름을 배달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여기지 않았나, 그동안 우린 일하는 기계처럼 살았지만 별 탈 없이 잘 살았으니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수십 년 동안 똥거름을 배달한 게 아니라 보물을 배달했다고 말하는 남편의 어깨가 그날따라 대견해 보였다. 고된 일과에 시달리면서도 힘들다는 푸념조차 내뱉지 않았던 그였다. 나는 늘 힘들다고 종종걸음을 쳤지만 어깨에 가족이라는 짐을 지고 싫은 내색 한 번 없었고 얼굴 붉힌 적 없었던 남편은 많은 일을 끌어안고 살면서 당연히 해야 하는 임무라고 여겼다. 

  남편과 나는 3톤 되는 퇴비를 밭골마다 한 포씩 내려놓고 견인차를 기다렸다. 세상이 어둠 속에 쌓여 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골짜기의 별빛이 눈부셨다. 늦은 밤 저 멀리서 기다리던 견인차의 엔진 소리가 부-웅 하는 소리와 함께 힘차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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