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잃어버린 가을과 행복경제 이야기

  • 기사입력 2023.11.16 16:36
  • 기자명 대구대학교 명예교수_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박천익

  인간의 행복은 계절의 변화를 어떻게 느끼며 살아 가느냐 하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계절의 변화를 생활의 일부로 느끼면서 그것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 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계절 중에서도 봄과 가을은 기온이 적당하고, 자연의 변화가 아름다워 삶을 즐기며 지내기 좋은 계절이다. 특히 가을은 인생을 깊숙히 음미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케 하는 계절이다. 가을이 인생을 알게 하는 계절인 이유는 가을에는 무엇보다도 오곡백과가 익어 결실을 맺고, 산야에 아름다운 단풍들이 강산을 물들이고, 그로부터 생명의 순환법칙을 체득하게 하기 때문이다. 

  봄, 여름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운 수목들이 가을이 오면 빨갛고, 노랗게 예쁜 단풍으로 변한다. 옛부터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을이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래서 우리의 '애국가'에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외국의 여러나라들도 아름다운 단풍과 가을을 갖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가을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그것보다도 더 아름답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 좋은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남한의 가을 단풍은 설악산에서부터 시작한다. 대체로 9월 하순부터 시작하여 11월 말 가을이 끝날때까지 이 단풍은 위도와 등고선을 따라 높 낮이를 타고 서서히 남쪽으로 내려온다. 설악산, 오대산, 일월산, 속리산, 주왕산 등을 거쳐 南道의 명품 내장산에서 단풍은 마지막 열정을 태우고 겨울의 준비에 들어간다. 겨울이 오면 추위에 밀려 그 자리를 물려주고 단풍은 낙엽 되어 떨어진다. 겨울에 하얀 눈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는 것도, 모두가 우리의 자연이 주는 천혜의 축복이다. 가을에 아름다운 화려강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자연이 공짜로 주는 선물이요, 미를 깨달아 인생의 아름다움을 알게하는 神의 은혜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가을이 주는 단풍은 봄꽃 보다도 화려하다. 필자는 늘 설악산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의 가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 설악산 두 정수의 아름다움은 세계에서도 출중하여, 가히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강한 기개와 신비를 담은 초원적 아름다움을 이들은 갖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오래전부터 제주도와 설악산을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중 제주도는 뜻대로 되었지만, 설악산은 아직도 미정의 과제로 남아 있다. 

  지구상에 세세히 수를 꼽아 보면, 수많은 나라들이 아예 흰 눈과 가을 단풍을 생각도 못하고 계절을 보낸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축복을 모두 누릴 수가 있으니 자연의 축복을 담뿍 누리는 자연행복 수혜국인 셈이다. 인간의 삶을 유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혜택보다 더 큰 것이 없다. 훌륭한 자연은 훌륭한 인물을 창조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다운 가을을 체득하기 위하여 가을산아를 찾는 일은 그 무엇보다도 멋진 일이며, 또한 심신의 건강을 챙기는 등, 일거다득의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심신이 모두 건강해져야 한다. 육체는 근육과 관절을 포함해서 튼튼한 내장을 가져야하고, 머리와 정신은 오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유연성과 신축성을 지녀야 한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眞 ㆍ善ㆍ美를 바르게 체득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진다. 참된 것, 착한 것,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제대로 느끼고 분별할 수 있는 감성을  가지며, 이들의 의민를 제대로 알고 지각하고 행하고자 할 때 인생행복의 파이는 커지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진ㆍ선ㆍ미를 바르게 챙기려는 열정이 없는 마음은 죽은 마음이다. 진정한 젊음은 나이의 젊음만이 아니다. 몸은 젊어도 마음이 늙은 사람이 있으며, 이와 반대인 경우도 있다. 마음이 젊게 사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젊은 사람이다. 참된 것, 착한 것, 그리고 이름다운 것을 추구하려는 열정이 강한 사람은 몸은 늙어도 마음이 젊은 사람이다.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을 느끼기 위하여 산야를 찾고, 봄에는 화사한 꽃들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봄나들이를 하고 싶은 사람은 마음이 젊은 사람이다. 젊은 마음은 인생의 진선미를 느끼는 열정이 있는 사람이며, 행복을 쟁취하려는 사람이다. 열정은 삶에서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하고, 生의 의지를 높여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실현하려는 욕구를 높인다.

  그런데 올해의 가을은  옛 같은 가을이 아니다. 가을을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가을이다. 옛 같은 우리나라의 탁월한단풍의 풍치를 찾아 사방을 다녀봐도 올해의 가을 단풍은 잃어버린 가을이다. 호숫길 느티나무와 벗나무들이 단풍도 없이 어느 새 낙엽을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있다. 잎이 제대로 된 단풍 색으로 물들기도 전에 말라서 비틀어져 떨어지고 만 것이다. 마치 병든 사람들의 일그러진 모습처럼 수목이 앓고 있다. 이미 초가을부터 나무는 앙상하고 말라 비뚤어진 잎사귀들 몇 개가 달랑 남아 가을바람에 초라한 모습으로 떨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상 느끼지 못했던 초라한 가을의 모습이다. 가을이 측은하고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진다.

  그런데 이런 옛같지 않은 계절의 변화는 이미 몇 해 전부터 예고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올해에 들어 본격적으로 그 실상을 들어낸 것이다. 올해는 봄도 봄같지 않았고, 여름 또한 대중없는 폭우로 사정없이 강산을 할퀴더니 가 여름처럼 덥고 습한 비가 내렸다. 기후의 경고이다.지구촌의 무지와 소아적 이기주의를 경고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올 가을 기온이 장기간 여름날처럼 무덥다보니 잎새도 바른 단풍의 길을 잊은 모양이다.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기온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밤은 5~8도 이하 정도로 차갑고, 낮은 15~18도 정도로 서늘해 주야의 기온 차이가 적당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올 가을은 여름처럼 더운 낮에 대중없이 비가 쏟아져 단풍은 열기에 익히고 말려져 버렸다. 습기와 열기에 삶기어 병들고, 제 모습을 잃은 것이다. 누누히 얘기하던 기후이변이 우리 생활주변에 절박하게 와 있음을 절감하는 가을이다. 잃어버린 가을은 앞으로 우리의 행복을 엄청나게 앗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참으로 상상하기 싫은 심상찮은 징조이다. 일찌기 많은 환경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거주불능의 지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지구촌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환경과 기후문제를 우려해 왔다.1970년대 로마클럽회의를 필두로 해서 1997년 교토의정서, 2016년 파리기후협약, 그리고 2022년 스톡홀롬 기후회의와 같은 지구환경을 걱정하는 수많은 환경, 기후회의가 있었지만 지구촌은 기후환경문제를 이율배반적으로 일관해 왔다. '나는 괜찮고 남은 않되는', '또 내결에는 않되고 남에게는 가능한' 이른바 'NIMBY'적 가치관으로 지구촌은 일관해 왔다. 소위 지구촌의 앞날을 이끌어가야 할 선진국들부터가 정치, 경제적으로 장기적인 안목을 갖지 못했고, 국제관계 또한 집단이기주의에 빠진 경향이 있다. 선진국들이모두가 눈앞의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인류의 먼 장래를 등한시 한 면이 크다. 이를테면 최근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배출의 사고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눈앞에 이익에 망가지는 지구촌, 선진국들의 환경재무장과 기후 인식의 르네상스가 절박한 시대이다.

  지구촌의 지난 2020년 연초부터 전세계를 공포로 떨게한 코로나 펜데믹에서 벗어 난지 이제 겨우 3년이 지났다. 오늘의 기업가들은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강조한다. 환경학자들은 지구촌이 2억 5천년 전 대멸종의 역사는 모두 온실가스, 즉 이산화탄소의 배출 때문이라고 한다. 이산화탄소가 지구촌 온도를 5도 상승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는 그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우리가 설마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나라의 강산도 지구촌의 심각한 기후변화의 영향권에 들어 온 것이다. '삼천리 금수강산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전설의 이야기로 불리워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위기감이 생긴다. 지금 우리가 챙기는 기후관리는 지상최고의 행복경제학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연은 우리에게 건강한 삶을 보장해 주는 절대적 존재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 살며, 자연을 느끼고 체험함으로써 진정한 삶의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인간이 당하는 많은 질병과 스트레스성 질환 역시 자연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만이 치유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것은 자연이 우리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맑은 기상, 좋은 햇빛, 아름다운 단풍을 즐기려는 마음은 건강한 가을을 향수하려는 긍정적 감성의 표현이다. 

  계절의 변화를 따라 자연과 순리대로 소퉁하는 삶은 행복의 선택이자 비용을 최소화하며 행복을 극대화 하는 행복경제의 실천이다. 우리가 오랜 시간 쉽게 접근하고 그 아름다움을 예찬해 온 우리의 멋진 가을이 이제부터는 그리 쉽게 얻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아쉬움과 두려움이 이 가을에 자리한다. 가을의 행복경제의 핵심은 좋은 기후환경을 보존하는데 있다. 올해의 잃어버린 가을이 행복경제의 상실감을 크게한다. 기후변화의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 오고 있는 이 가을에 올해, 지구촌의 절절한 대각성을 기다려 본다. 

  아름다운 단풍과 건강한 자연이 조화된 가을은 행복한 삶을 창조하는 행복경제의 기초이다.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단풍은 건강한 가을이 제공하는 행복재이자 이를 향수하는 자에게는 저렴하고도 가성비 높은 행복경제이다. 건강한 가을을 되찾기 위해 지구촌의 환경재무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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